유진이의 겨울연가 [7] 녹차향

조회 수 3009 2003.05.22 09:40:46
소리샘

집에 들어서자마자.. 진숙인 잔뜩 흥분한 얼굴로 날 맞았다.
[어땠어? 좋았지? 다들 너보고 기절하진 않았어? 이쁘다고 그러지? 응? ]
[어... 오늘 고마웠어.. ]
[훗.. 고맙긴.. 내가 널 위해 뭔들 못하겠니? 우와.. 정말 다시 봐도 이쁘다.. ]
[진숙아.. 나 옷 갈아입고 나올게.. ]
[그래 그래. ]

파티복을 던지듯 침대에 벗어놓고 상처가 생긴 발뒤꿈치에 밴드를 붙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영 기분이 개운치 않고 심난하기까지 했다.
호텔에서 만난 그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도대체 유진씨껀 뭐가 있죠?
유진씬 볼때마다 사람을 놀라게 만드는 재주가 있네요.  그 끝이 뭔지 궁금해지는군요. ]

그는 왜 그렇게 얘길 했을까.. 그리고.. 그 표정은 뭐지..?
처음 보는 그의 차가운 얼굴..

곧 난 그렇게 차려 입고 간 것을 후회했다.
그냥 평소대로.. 조금 더 깔끔하게만 입고 갔으면 됐을 것을..
뭐하러 평생 안 하던 옷차림에.. 맞지도 않는 신발까지 신고 갔을까..
피식.. 멍한 웃음을 흘렸다.

[아무거나 입고 와요. 유진씬 뭘 입어도 잘 어울릴꺼에요.. ]
지나가듯 그가 한 말에 기분이 좋았던 내 자신이 우스워 보였다.

오늘.. 사실 진숙이가 애써 준비해준 옷을 거절하기도 힘들었지만..
솔직히.. 꼭 그것 때문에 그 옷을 입었던걸까..

그에게 보이고 싶었다면.. 그가 나를 보고 한번쯤 예쁘다는 소리를 해주길 바랬다면..
지나가는 눈길이 잠시라도 나에게 멈추길 바랬다면..

후.... 이렇게 바보 같을 수가 있을까..
그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안 하던 어색한 옷차림까지 하고..
또 내 기대와 달랐던 그의 반응에.. 하고 간 옷차림을 후회하고 있다니..
난 도대체 뭘 기대하고 있는 건가.. 그가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기라도 바라는 거야..?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다 떨쳐버리려는 듯 더욱 세게 흔들었다.    

뒤늦게 상혁이가 떠올랐다.
치렁치렁한 옷을 어쩌지 못하고 엉거주춤 벗겨진 발뒤꿈치를 만지고 있던 날 보던 상혁이의 발게진 눈가..
그리고 오는 내내 씁쓸해하던 표정..
상혁인 이런 옷차림의 나를 못내 어색해하고 낯설어했다.

또다시 창립파티에서의 내 모습이 떠올라 기분이 울적해졌다.
그 사람의 냉담한 얼굴에 주눅이 들었고..
내 모습이 내 자신이 어색해 자꾸 구석자리만 찾았던 나..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도망치듯 먼저 그 자리를 빠져나오던..
옷차림에 어울리지 않게 절뚝였을 내 뒷모습..
내 옆에 상혁이가 아니었다면 얼마나 더 초라해 보였을까..

한숨을 내쉬며 아무렇게나 던져버렸던 옷을 주섬주섬 접어 옷장 맨 아래에 밀어 넣었다.


모레면 스키장으로 가야 했기에 짐을 챙기느라 회사는 아침부터 부산했다.
스키장으로 가기 전에 혼자 남을 승룡이를 위로할 겸 저녁에 회식을 하기로 했다.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근처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술자리가 길어지면서 언니와 승룡이의 목소리는 한껏 높아지고 웃음소리도 커진다.
이럴 때 나도 술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앞에 놓인 콜라잔을 괜히 퉁퉁 튕겼다.
승룡이가 진실게임을 하자며 빈 술병을 돌렸다.
내 앞으로 술병이 멈췄고 승룡인 장난스레 내 첫사랑 얘기를 물었다.
얘길 안하려는 날 승룡이와 언닌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이제 그만해.. ]
[안돼. 꼭 들어야겠어. 설마 상혁씨 하나 뿐이었겠어? 너도 첫사랑 있었을 꺼 아냐.
에이.. 말해보라니까? ]
그냥 고등학교 때 좋아한 애가 있었다. 그게 다다.. 그냥 그렇게 넘겨버려도 되련만..
내 입은 굳게 닫혀 열리지 않았다.

내 첫사랑...
그것은 술자리 안주로 삼을 만큼 가볍지도.. 그저 지나가버린 추억꺼린 더더욱 아니었다.
아직도 내게 상처로 남아있고.. 여전히 내 맘속에 살아있는 사람이기에..

그때 누군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김 차장님이었다.
그리고 그의 손짓을 따라 본 자리엔 그 사람이 앉아있었다.

우린 합석을 했고.. 그와 마주 앉아 있다는 것이 불편했다.
그는 창립파티에서 날 바라보던 차가운 표정 그대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쨌든 그들과의 합석으로 다른 화제로 옮겨가겠지 하는 마음에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승룡인 포기하지 않고 그들 앞에서 내 첫사랑에 대한 질문을 계속 이어나갔다.
난 더욱 난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대답을 피하려는 나와 승룡이의 실랑이는 계속 됐다.

[그만 하죠. 기억할 수 없을 만큼 많은가 보죠. ]

그의 한 마디에.. 울컥 기분이 상했다.
그냥 농담이라기엔 그의 표정은 너무나 차가웠고.. 입가엔 묘한 비웃음이 걸려있었다.
당신이 뭘 안다고..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런 말을..
울컥한 마음에 앞에 놓인 술잔을 들어 단숨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실수를 저지를지 생각 할 틈도 없이 부어 주는 대로 몇 잔을 더 받아 마셨다.

머리가 무거워지고 눈앞이 점점 흐려져 갔다.
문득 정신이 들었을 땐 주위는 조용해져 있었다.
그와 나.. 단 둘만 남아있었다.
그는 말없이 앉아 술잔만 기울이고 있었다.

[이사님은... 한번 한 실수는 다시는 안 하는 편인가요..
아니면 안 해야지 하면서도.. 반복하는 편인가요..? ]
[그건 왜 묻죠? ]
[그냥요.. ]
[난 실패는 해도 실수는 안 합니다. 더더구나 같은 실수 따윈 하지 않아요. ]
[그렇구나... 그럼 만약에.. 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안 봐야지 마음먹었다면
보고 싶어도 참겠어요.. 아님 만나시겠어요..? ]
[전 안 만납니다. ]
[그렇구나.. 정말 다르네.. 다른 사람이구나...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똑같이 생겼지..? ]
[뭐라구요? ]
[닮았어요.. 정말.. 닮았어요. ]
[누구랑요? ]
난 그의 물음에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버렸다.
[내가 좋아한 사람요.. 내가 처음으로 좋아한 사람... 처음으로... ]

그때 난 그에게 뭘 기대하거나 하는 마음은 아니었다.
그저.. 술김에.. 마음속 응어리 하나 푸는 심정으로.. 그래.. 술에 취해서..
그가 내 얘길 듣고 이해해주거나 놀라거나.. 그런 건 내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았다.
그냥 혼잣말처럼.. 준상이의 사진을 앞에 두고 중얼거리듯..

준상이와 똑같이 생긴 이 사람이.. 준상이가 아닌 다른 사람이란 사실에 가슴이 아팠고..
준상이에 대한 그리움이 뼈에 사무칠 만큼.. 아프게 다가왔다.
[좋아하는 색이 뭐에요? 아마.. 하얀색일꺼야.. 틀림없어.
좋아하는 계절은.. 겨울. 그래 겨울이 맞을꺼야.. ]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무 생각도..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난 술에 취해 정신없이 준상이 얘기를 풀어놓고 있었다.  

번쩍.. 눈이 떠졌다.
환한 불빛에 눈이 부셔 다시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이건 꿈이 아닐까...

준상이가 저만치 앞에 서있었다.

[준.. 상.. 아... ]

[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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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연가 사람들  녹차향글방 펌











댓글 '2'

달맞이꽃

2003.05.22 11:05:24

준상아~~~~~준상이니~~~~~유진이니~~~~
아직도 겨울에 그 대사가 입가를 맴돕니다 ..아주 크게~~~더 크게 외치고 싶은 충동을 느껴요 ..후후후~~~아직도 그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네요 ..후후후~~~~~많은시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잊었다고 하면서 말예요 ..후후후~~~~소리샘님 ..행복하세요^^*

영아

2003.05.22 12:36:54

어!!우리 달맞이님 ...ㅎㅎㅎ
소리샘님 매일 올려주시는 유진이의 겨울연가 잘 읽고있습니다...^^
유진이와 준상이의 애절한사랑에 가슴아파하며 마음 졸이던 그 시절이...그 영상들이 주마등처럼 ....
소리샘님 감사합니다...^^
소리샘님! 달맞이님!오늘 하루도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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