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이의 겨울연가 [13] 녹차향

조회 수 3018 2003.05.30 13:50:42
소리샘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어깨 허리.. 여기저기 둔기에 맞은 듯 욱신욱신 쑤셨다.
오랜 꿈에서 갓 깨어나 현실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현실.. 현실이다..
난.. 그래.. 난 쓰러지는 목재더미 아래서 그를 밀어냈어.. 준상이가 아닌.. 그 사람을..
몇 번 힘을 주어 간신히 눈을 떴다.

[유진아! 괜찮아? ]
정아 언니가 얼굴을 바짝 들이밀며 걱정스런 얼굴로 날 쳐다보았다.
여긴.. 병원...?
[응... 괜찮아... ]
그는 괜찮은 건가... 혹시 다치진 않았을까..?
[언니.. 그 사람은..? 괜찮아? 다치지 않았어? ]
[어.. 괜찮아.. 야아. 상혁이 왔어. 상혁이가 너 얼마나 걱정했는데.. ]
[어..? ]
그제서야 언니 뒤에 서있던 상혁이가 보였다.
굳은 얼굴로 아무 말 없이 날 바라보는 상혁이..
속으로 숨을 꿀꺽 삼켰다.
아.. 지금 내가 무슨 실수를 한 건가..
상혁인 내가 다쳤다는 걸 알고 바로 병원으로 달려와서.. 내내 내 곁에 있었을 텐데..
그런데.. 내 입에선 상혁이가 아닌 그 사람을 먼저 찾았으니..
[상혁아... ]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미안한 마음에 이름만 불러놓고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언니가 병실을 나가고.. 그때 그 사람이 들어왔다.
그 사람을 바라보는 상혁이의 눈빛이 싸늘하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 그 사이에서 어쩔 줄 몰랐던 나..
때마침 채린이가 보였다.
[채린아.. 너도 왔어..? ]
[아휴.. 유진아. ]
채린인 얼른 내 곁으로 달려와 호들갑을 떨며 날 염려했다.
과장된 몸짓과 말들이 못내 어색했지만 그래도 채린이가 와준 게 다행스럽고 고마웠다.
채린이가 아니었다면.. 그 자리에서 난 숨이 막혔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의 말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상혁이 때문에 내내 가슴을 졸여야 했다.

응급실에서 병실로 자리를 옮겼다.
상혁인 내내 말이 없었다.
내가 먼저 상혁이에게 어떤 말이라도 해야하는데.. 그런데 입이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이 침묵이 힘겹기만 할 뿐이었다.

저녁식사로 나온 죽을 몇 수저 떠 입에 넣었다.
[준상이 때문이지? ]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래.. 다른 사람이었더라도 넌 그랬을꺼야.. 하지만 난 준상이 때문이었다고 생각해. ]
[그 사람.. 물론 준상이완 아무 상관없다는 거 알지만.. 그래도 다치는 거 보고 싶지 않았어.. ]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구나..
나.. 알면서도 니가 아니라고 말해주길 바랬다.
준상이와 닮아서가 아니라 그냥 우연히 그랬다고.. 그렇게 말해줄 순 없었니?
이럴 땐 너의 그 솔직함이 정말 싫어!
너 지금 내 앞에서 준상이 못 잊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거잖아! ]
상혁인 고통스럽게 날 바라보고 있었다.

[십년이야! 십년간 기억했잖아.. 그럼 된 거 아니야?
앞으로 얼마나 더 기억할꺼니! ]
[상혁아.. ]
[난 니가 이민형씨 얼굴에서 준상일 떠올리는게 싫어. 그리고.. 준상일 기억하는 건 더 싫어! ]
[ ..... 그럼.. 내가 어떡해야 할까...?
나도.. 잊고 싶어.. 준상이에 관한 것..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으면 좋겠어.
근데.. 내가 잊고 싶어도.. 내 눈이 준상이 얼굴을 기억해..
내 가슴이.. 준상이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다구..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내가 어떡하면 좋을까..
상혁아.. 내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니..? ]

눈물이 흘러내렸다.
미안하다며.. 병실을 나가는 상혁일 잡지 못하고.. 그냥 보냈다.
깜깜한 병실.. 침대 위에 쭈그려 앉은 채 한참을 울었다.
상혁이에 대한 미안함에 괴로웠다.

난.. 정말 나쁜 애다.
난 상혁이에게 차마 해서는 안될 얘기를 한 것이다.
10년간을 무조건 날 사랑해준 사람에게..
한번도.. 준상일 잊으라 강요하지 않고 기다려준 사람에게..
아무리 기다려줘도.. 아니 평생을 기다려줘도..
난 니가 아닌 다른 이를 간직하며 살 것이라고 그렇게 말한 것과 무엇이 다른가..
나와 결혼해서 함께 살더라도.. 난 여전히 다른 이를 사랑할 것이라고..
그래도 좋다면.. 그래도 참을 수 있다면 내 곁에 머무르라고..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닌가..  
내가 이렇게 잔인한 사람이었던가..
상혁이한테 이런 나를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 달라고..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여기에 오는게 아니었다..
상혁인 이곳에서.. 그 사람이 준상이가 아니란 걸 확인하라고 했었다.
상혁이 말대로.. 그 사람은 준상이가 아니다.
하지만.. 그 것을 깨닫는 게 다 무슨 소용인가..
난 이렇게 그 사람에게서 준상일 찾고 있고.. 준상이의 기억은 더 짙어만 가는데..

두려웠다.
나도 알아채지 못한 사이에.. 내 마음은 점점 상혁일 밀어내고 싶어하는 건 아닐까..
준상이의 기억이 짙어질수록.. 상혁이의 존재감은 점점 옅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만큼 죄책감은 더 커져..  날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어째서 10년이란 긴 시간을 함께 보내고도.. 상혁일 사랑하지 못했는지..
어째서 상혁이와 보낸 10년이.. 10년 전 준상이와의 단 몇 달간의 시간을 뛰어넘지 못하는 것인지..

내가 상혁일 사랑하지 않는 다는 것.. 그 것을 깨닫는 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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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연가 사람들  녹차향님 글방펌














댓글 '1'

★벼리★

2003.05.30 22:16:26

이글을..정말 어느새 열심히 읽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유진의 맘은 이렇게..아프게 또 기억나게..예쁘게 그려주신 녹차향님 그리고 늘 퍼오시는 수고를 하시는 소리샘님..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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