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이의 겨울연가 [21] 녹차향

조회 수 3043 2003.06.17 11:33:16
소리샘
머릿속이 아득해지면서 그의 얼굴이 뿌옇게 흐려져갔다.

안돼... 아무도 준상일 대신 할 순 없어..
당신은 더더욱 안돼요.
당신은 너무.. 너무 닮았으니까.. 날 혼란스럽게 만드니까..
죽은 준상일 사랑한다는 것.. 그래요.. 힘들었어요. 하지만 지금만큼은 아니에요.
어느 누구도 방해하지 않았으니까.. 그냥 혼자서 몰래 기억하고 사랑하면 됐으니까..
그런데 당신이 나타나면서 모든 게 엉망이 됐어요.
그런 똑같은 얼굴로.. 목소리로.. 준상이를 잊게 해주겠다구요?
이젠 당신을 통해 준상일 보는 것도.. 당신을 통해 준상일 잊는 것도.. 난 싫어요.
준상일 그냥 그대로 내 맘에 남길 수 있게 해줘요.
지금까지 살아왔던 대로 그렇게 살게 해줘요.
이런 내가 답답하고 미련스러워 보이더라도.. 그냥 날 가만 놔줘요.

[그럼.. 상혁씬 뭐죠? ]
머릴 한 대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꿈속을 헤매듯.. 준상이와 그 사람 사이에서 헤매던 나에게..
상혁이란 이름은 내가 처한 현실을 일깨워 주기에 충분했다.
상혁이.. 나와 결혼을 약속한 사람...
그런데 어떻게 내가 상혁일 까맣게 잊고 있을 수 있었는지..
잠시 잊고 있었던 현실의 무게가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래.. 나한텐 상혁이도 있었어..
[지금 유진씨가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에요.. 얘기해 봐요. 누구죠? ]
내 어깨를 잡고 소리치듯 묻는 그 사람 앞에서 난 그저 무력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지금.. 내가 상혁일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것인가.
아님.. 내가 죽은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
그래서 자신이 극복해야할 사람이 죽은 사람인 것에 화가 나는 것인가..

내가 무슨 말을 하길 원해요?
상혁일 사랑하지 않는다는 대답을 원하나요?
그렇다해도 뭐가 달라지는 데요?
내가 누굴 사랑하든.. 사랑하지 않든.. 그건 내 문제에요.
당신이 날 사랑한다는 것이 내 맘을 강요할 권리를 갖는 건 아니에요.

[이거 놔요! ]
난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어 그의 손을 뿌리치려 애썼다.
하지만 내가 뿌리치려는 만큼 내 어깨를 쥐고 있는 그의 손엔 힘이 들어갔다.
[말해줘요. 유진씨 마음에 담긴 사람.. 누구죠? ]

[그 손 놓으시죠! ]  
낮고 분노에 찬 상혁이의 목소리.. 내가 잘 못 들은 것이기를..
하지만 성큼성큼 다가오는 사람은 분명 상혁이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상혁이가 어떻게 여길...
[상혁아! ]
[유진이 나랑 결혼할 사람입니다.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거.. 너무 무례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가자, 유진아.]
상혁인 그와 더 이상 상대도 하기 싫다는 듯 곧바로 내 손을 잡고 돌아섰다.  
[아직 유진씨 대답 듣지 못했어요. 대답해 봐요. 유진씨가 사랑하는 사람.. 누구죠? ]
심장이 다시 한번 덜컹 내려앉았다.
[그걸 당신이 왜 궁금해하죠? ]
[유진씰 사랑하니까요. ]
순간 아찔했다.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그대로 주저앉고만 싶었다.
어떻게 상혁이 앞에서 그런 말을...
[뭐야? 이 자식이.. 정말.. ]
상혁인 그를 한 대 칠 기세로 멱살을 움켜 잡았다.
난 상혁이를 잡고 말렸다.
[상혁아! ]
하지만 그는 상혁이에게 멱살을 잡히고도 조금도 움추려드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그의 목소리는 더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당신은 궁금하지 않나요? 유진씨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누굴지? ]
가슴이 떨려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이 들었다.
저 사람.. 지금 제 정신이란 말인가?
기어이 상혁이에게도 확인 시켜야겠다는 것인가?
내가 처한 현실이 어떤지... 앞으로 내가 어떤 일을 겪을 지는 안중에도 없이...
자신의 마음만 중요하단 말인가?
지금 자신의 말이 날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가고 있음을.. 정말 모르는 것인가..
[다시는 유진이한테 접근하지마! 내가 허락하지 않아! ]
상혁인 내팽개치듯 그의 옷을 놓고 거칠게 날 잡아 끌었다.

상혁이에게 손을 잡혀 돌아서면서 바라본 그 사람은..
조금의 미동도 없이 그대로 나와 상혁일 바라보고 있었다.
상혁일 쏘아보는 눈빛도 아닌.. 그렇다고 슬픔에 찬 눈빛도 아닌..
아무 감정도 담겨있지 않은 듯.. 그저 무기력해 보였던 그의 눈빛..
그 순간 멈칫하며 발을 떼기를 망설이는 두 다리에 난 당황했다.
아주 잠시였지만.. 상혁일 따라가는 것을 내 마음이 거부했던 것인가?
하지만 난 곧 잠깐의 망설임은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그리고.. 상혁이가 그 것을 느끼지 못했을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상혁이 머릿속엔 온통 그 사람과 나에 대한 분노 뿐 일테니까..

상혁인 곤돌라에 올라서도 날 쳐다보지 않았다.
앙 다문 입술과 너무 꽉 쥐어 하얗게 되 버린 손등이 상혁이의 마음이 어떤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하는데..
하지만 머릿속이 어지럽기만 할 뿐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두렵고 떨렸다.
그가 나타난 후부터 나에 대한 상혁이의 믿음은 점점 옅어지고 있는 상태였다.
늘 불안해했고.. 그와 나 사이를 지나칠 정도로 신경 쓰여 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상혁이에게 그가 날 사랑한다는 말까지 했으니..

곤돌라가 아래에 도착하고..
상혁인 곧바로 호텔로 들어섰다.
[상혁아.. 잠깐 내 말 좀 들어봐. 응? ]
난 간절하게 상혁일 붙잡았다.
하지만 상혁인 그런 날 뿌리치고 방까지 그대로 올라왔다.
방에 도착하자마자 상혁인 옷장에서 옷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런 상혁이의 행동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었다.
날 이곳에 두지 못하겠다는 것이겠지..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을 더 이상 참지 못한다는 것이겠지..
하지만.. 이렇게 가는 건..
머릿속이 이곳에서 해야할 일들과 여러 가지 일들로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상혁아... 이러지마.. ]
[중요한 것들만 챙기고 나머지는 정아 누나한테 보내달라고 해.
그게 안되면 나중에 내가 한꺼번에 옮겨줄게. ]
[이러지마 상혁아.. 나 그럴 수 없어. ]
상혁인 잠시 손을 멈추고 날 차갑게 쳐다보았다.
[왜? ]
상혁이의 얼음장같은 눈빛에 주눅이 들어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이 일.. 나한테 소중하다는 거.. 잘 알잖아. ]
[이민형. 그 사람 옆에 있고 싶은 게 아니고? ]
아... 속으로 탄식을 토해냈다. 절망스러웠다.
상혁이의 오해를 어떻게 해야 풀 수 있단 말인가..
[난 너한테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니가 그 사람한테 어떻게 보였길래 그 사람이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어떻게 널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가 있냐구! ]  
상혁인 악을 쓰듯 소리를 질렀다.
분노와 상처로 뒤범벅이 된 상혁이의 얼굴을 더이상 쳐다보지 못하고 돌려버렸다.
상혁인 다시 짐을 싸기 시작했다.
난 그런 상혁일 더 말리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할 말이 없었다.
상혁이 말이 맞으니까..
아까 그 사람의 행동이 정말 나하고는 상관없는 것이었냐고..
나한테 몇 번이나 되물었지만 아니라고 자신 있게 고갤 저을 수가 없었다.
그가 날 사랑하는 건.. 그건 그 사람 혼자만의 생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상혁이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건.. 그것조차 그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물 수는 없었다.
그와 함께 있는 동안.. 언제부턴가 난 상혁이의 존재를 잊고 있었고..
그에게 보여주었던 건 오로지 준상이에 대한 추억과 사랑뿐이었다.
그런 내 모습에 그는 내가 상혁일 사랑하지 않는다고 확신했을 것이고
마침 그때 나타난 상혁이에게 자신 있게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결혼을 약속한 상혁이라도 자신과 같은 입장일 뿐이라고..
어차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둘 다 아니라고..
아...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가방을 들고 방을 나서는 상혁일 보고서야 퍼뜩 정신이 들었다.
상혁인 기어이 날 데리고 서울로 갈 생각인 것이다.
안 되는데.. 정말 이렇게 가는 건 아닌데...
상혁인 가방을 차에 밀어 넣고 나에게 차에 타기를 강요했다.
난 이대로 서울로 갈 수 없다는 위기감에 상혁이의 마음을 돌리려 애썼다.
[상혁아.. 제발 얘기 좀 해. 나 못 믿는 거니? 응? ]
[그래. 못 믿어. 너 지금 흔들리고 있는 거잖아! ]
[나 흔들리는 거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
정말.. 나 그 사람한테 아무 감정 없어. 그동안 내가 경솔했던 거.. 인정할게.
그러니 제발...
[그런데 아까 왜 대답 못했어? ]
뭐...? 무슨...
[이민형씨가.. 사랑하는 사람 누구냐고 물었을 때.. 왜 대답 못한 거니?
....... 니가 사랑하는 사람.. 나 맞니..? ]
상혁이의 눈에 어느덧 물기가 어렸다.

아... 이렇게 바보 같을 수가..
지금껏 상혁이가 그 사람 때문에 화가 난 거라고만 생각했다니..
정말로 상혁이에게 상처를 준 사람은.. 나 인 것을..
이제까지의 믿음을 완전히 무너지게 한 사람은.. 바로 나 인 것을..

황망하게 상혁이가 출발해 버리고.. 난 망연자실해서 멍하니 그 뒤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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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연가 사람들 녹차향 글방 펌










댓글 '4'

달맞이꽃

2003.06.17 17:48:25

고마워요 ~
소리샘님 ..녹차향님 . 후후후~~
두눈 크게뜨고 잘 읽고 갈람니당 ㅎㅎㅎㅎ좋은 저녁 맞이하세요 ~~^*

코스

2003.06.17 21:42:57

오늘은 이 글을 좀 더 조용한 시간에 읽어야 겠네요.
나만의 조용한 시간에요...
주변의 분위기가 이 글을 읽기엔 너무 산만해서리...
녹차향님..소리샘님...나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좋은시간을 보낼께요. 고마워요.^^

이지연

2003.06.17 21:58:24

벌써 많은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제머리가
제가슴이 겨울연가를 기억하고 있어요^^
아마도 오래동안 기억될것 같아요..
녹차향님의 글이 22번까지 있는걸로 아는데..
녹차향님의 글이 계속되길 바라며...

소리샘

2003.06.17 23:26:26

네 녹차향님 글이 22번에서 멈춰있답니다
저도 무척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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