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이의 겨울연가 [15] 녹차향

조회 수 3051 2003.06.03 08:26:51
소리샘
확실히.. 그와 나 사이의 분위기는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무척 친해 보이거나 할 만큼은 아니었다.
하지만 난 그의 티 나지 않는 작은 배려들을 편하게 받아들이고 있었고..
우리의 대화 사이사이로 간간이 웃음이 새어나올 때도 있었다.

그동안 난 그가 있는 자리는 되도록 피하려고 애썼고.. 그도 구태여 권하려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현장에 함께 있게 되면 일 얘기 외엔 서로 눈길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그 틈에서 정아 언니와 김차장님이 어색한 분위기를 바꿔보려 애썼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언니나 김 차장님은 우리 둘 사이에 얽혀있는 오해의 실타래는 알지 못했으니까..
그러다 내가 퇴원하는 날부터 갑자기 편해진 그와 나 사이를 둘 다 의아해했다.

[이 이사가 갑자기 너한테 잘 해주는 이유가 뭐야? 응? ]
산꼭대기에 있는 레스토랑을 살펴보러 나선 길이었다.
아직 정확한 계획은 잡혀있지 않지만 스키장 리노베이션 공사가 끝나면 곧 공사를 시작할 것이다.
아직 우리에게 공사를 맡길지 여부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잠시 스키장 공사가 한가한 틈을 이용해 미리 살피러 온 거였다.
언닌 그와 김 차장님이 다른 곳에 간 틈에 퇴원 후 쭉 궁금해하던 걸 물었다.
언닌 뭔가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그 사람하고 나 사이에 뭐 다른 일이라도 있었다고 생각하는 건가?
난 점짓 모른 척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냥.. 나한테 미안해서 그런 가보지 뭐.. ]
[미안하긴 뭐가? 으응.. 하긴.. 자기 대신 다쳐주기까지 했으니... ]
언닌 그 이유가 맞다고 생각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너 상혁이한텐 제대로 해명한거야? ]
[ .... 응.. 했어... ]
대답은 그렇게 하면서도.. 맘 한구석이 답답해졌다.
지금 상혁인 어쩌고 있을까... 후....
[상혁이가 이해해? 딴 남자를 위해 대신 다친 여자친굴 이해해? ]
언닌 목소릴 높였다.
[상혁이 걔도..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애 아니니? 그걸 이해한다구?
너 솔직히 말해봐.
요즘 상혁이한테 전화도 통 없던데.. 그 날 이후로 너네 삐걱대는 거 맞지? ]  
난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언니 말이 맞다.. 누가 그걸 이해해 줄 수 있을까..
만약 내가 그저 인부 한 명을 구하고 대신 다쳤더라면.. 상혁인 내게 무모했다며 화를 냈겠지..
그러다가 나중엔 잘했다고.. 하지만 다음부턴 그러지 말라고 위로해줬겠지..
하지만.. 내가 다친 건 단순히 누굴 구했다는.. 그런 게 아니니까..

지난 10년 간 준상이의 존재는.. 어쩌면 우리에겐 금기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섣불리 꺼내면 서로에게 상처가 될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난 상혁이 앞에선 내 마음속에 있는 준상이를 숨겼고.. 상혁인 준상이의 얘기를 절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우린 서로 모른 척 하는 것에 익숙해져갔다.
그러다 우리 앞에 이민형씨가 나타나면서부터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 서로의 마음이..
이번 사고로.. 모든게 그대로 드러나 버린 것이다.
내가 준상일 기억하는 것을 넘어 아직도 사랑하고 있다는 걸 상혁이한테 깨닫게 해 준 것이 되었고..
난.. 상혁이가 그동안 내 마음속에 있는 준상이의 존재에 얼마나 비참해 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내 마음을 내 뜻대로 어쩌지 못함을.. 상혁이에게 변명꺼리로 삼기엔..  
상혁이가 내 곁에서 기다려준 시간이 너무 길고.. 그 정성이 너무 깊다.
후.. 어쩌면 좋을까..

[어? 여기 피아노도 있네? ]
난 언니의 물음을 피하기 위해 피아노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오랫동안 비어있던 곳이라 피아노 위에도 먼지가 뽀얗게 앉아있었다.
뚜껑을 열고 먼지를 후.. 불어냈다.
그리고 손가락을 건반에 가져다 눌러보았다.
띵...
[우와.. 이 피아노 소리도 나네? ]
언닌 낡은 피아노에서 소리가 나는 게 신기한 듯 가까이 다가왔다.
건반 위에서 내 손은 무의식적으로 나에겐 너무 익숙한 그 멜로디를 치고 있었다.
어디서든 피아노 건반만 보면.. 언제나 내 귓가엔 준상이가 쳐준 '처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건반 위에서 아름답게 움직이던 준상이의 손가락이 떠올랐다.
그렇게 한 소절이나 쳤을까...
[어? 나 이 곡 아는데..? ]
언제 왔는지 그 사람이 문을 열며 반가워했다.
순간.. 훅.. 숨을 멈췄다.
'처음.. '을 안다고..? 이 곡.. 아는 사람 별로 없는데...
[계속 쳐요. 듣기 좋은데.. ]
[아.. 아뇨. 악보가 없어서요.. 혹시... 이 곡 칠 줄 아세요..? ]
[어쩌죠? 난 피아노 칠 줄 모르는데.. ]
[ ... 예..... ]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실망... 이랄까..?
그 사람이 피아노를 칠 줄 모른다는 말에 실망스런 마음이 들었다는 것.. 내가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한번도 그에게 피아노를 칠 줄 아냐고 물은 적도 없고.. 그가 칠 줄 안다고 한 적도 없는데..
어째서.. 난 여지껏 그가 피아노를 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을까..
이 곡.. 칠 줄 아세요..?
나의 물음에 당연히 아주 당연히.. 그가 능숙하게 '처음'을 칠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니..
난 아직도 그에게서 준상이와 같은 모습을 바라고 있는 걸까..
씁쓸한 마음에 몰래 긴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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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연가 사람들  녹차향글방 펌











댓글 '3'

소리샘

2003.06.03 08:31:08

내일이 윤석호 감독님 생일입니다
겨울연가를 탄생시켜주신 고마운 분 생신날 여름향기 제작발표회가 무주에서 있답니다
그래서 겨울연가 팀들 몇명이 무주 갑니다
윤감독님 생일도 축하드리고 제작발표회 구경도 하고요

봄비

2003.06.03 09:12:25

와~~무주까지
잘다녀오시고요
눈팅으로 잘 읽고 있습니다
더불어 우리 스타지우 몫까지 전해주세요
그럼 잘 다녀오세요

온유

2003.06.03 22:13:45

윤석호 감독님 진심으로 생신 축하드립니다.
소리샘님두 혹 무주 가시나요~~~
주연 배우들 본 소감문도 좀 올려주세요.
준상이와 유진이가 나란히 앉아 피아노 치던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준상아,유진아 보고 싶다~~`
많이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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