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서 그것과 하나 되시게...

조회 수 3066 2002.04.06 23:28:52
토미
  틱낫한(Thich Nhat Hanh)이라는 이름의 베트남의 대선사가 쓴 <거기서 그것과 하나 되시게 -원제: The Miracle of Mindfulness>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걸어갈 때 수행자는 마땅히 자기가 걷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앉아 있을 때 수행자는 마땅히 자기가 앉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몸으로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든지 수행자는 마땅히 그 자세를 알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수련함으로써 수행자는 몸소 한결같은 '마음 모음'상태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천천히 마음을 모아 수련을 하면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삶의 기쁨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마음 모음을 통해 흩어진 마음을 불러들이고 나의 생각과 몸, 호흡을 하나로 회복시킬 수 있어 순간 순간에 충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낮에 창문을 때리는 비를 보니 생각이 난 글입니다.
  마음을 좀 차분하게 하고 싶어서요.

  이번 토요일은 '세실'님의 충고대로 야외로 나가볼까 했는데,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아마 안 하던 일을 하려니 하늘이 놀리는 모양입니다.

  서점에 가서 고른 종교에세이中에 <차나 한잔 들고 가시게 - '반야심경般若心經'에 담긴 삶의 지혜>라는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골라본 구절과 본문의 일부입니다.

  보시布施란 어디에도 얽매이는 일 없는 공의 심성에서 행하는 타인에 대한 베품을 말합니다.

  지계持戒란 문자 그대로 계를 지킨다는 뜻입니다. 단, 대승 불교에서는 재가신자在家信者에 대해서는 '율'이라는 벌칙 규정이 없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뭔가를 강제되어서 계를 지키는 것이 아니고 계를 지키는 것을 자발적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인욕忍辱이란 그저 수동적으로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불완전함을 자각해서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참고 견딘다는 데 주안점이 있습니다.

  본문 71-74쪽에서

       이것이 (반야심경)의 실천이다.

  육바라밀을 하나하나 설명하기 전에 우리 집의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딸과 아들이 아직 초등학교에 다니던 무렵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딸이 이웃에서 케이크 한 조각을 받아 가지고 오자 아내는 이렇게 일렀습니다.

  "동생하고 둘이 나눠 먹어라."

  딸아이는 그 말대로 동생과 사이 좋게 식탁에 마주 앉아 케이크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때 모녀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듣고 있다가 이번 기회에 아이들에게 불교 이야기를 해주면 좋겠다 싶어 곁에 앉아 이런 질문을 해 보았습니다.

  "지금 어머니가 왜 케이크를 둘이서 나눠 먹으라고 하셨는지 아니?"

  잠시 뒤에 딸아이가 대답했습니다.

  "그야 나만 먹으면 동생이 안됐으니까..."

  나는 이 대답에 아무 의견도 말하지 않은 채 다음에는 아들에게 대답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아이는 누나와는 뭔가 다른 대답을 해야겠다 싶었던지 열심히 궁리를 한 끝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지! 알겠어요, 아버지. 내가 이 다음에 케이크를 받아오면 이번에 얻어먹은 보답으로 누나에게 나눠줄 테니까 지금 누나가 내게 나눠주는 거지요?"

  제 딴에는 열심히 생각해서 내놓은 대답이었지만 두 아이의 대답 모두 내가 바라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천천히 말해주었습니다.

  "어머니가 나눠 먹으라고 한 것은 상대가 안 되어서가 아니야. 물론 이 다음에 보답을 받기 위해 나눠주라고 한 것도 아니야. 불쌍하다는 생각 때문이라면 미운 사람에게는 주지 않겠지? 또 보답을 받을 것 같지 않을 때는 절대로 나눠주지 않게 될 거고 말야. 어머니가 케이크를 나눠 먹으라고 한 것은 나눠 먹으면 훨씬 더 맛이 있기 때문이야. 혼자 먹는 것보다는 둘이서 먹는 게 훨씬 맛있게 느껴지는 거지. 아버지와 어머니는 너희들이 항상 그렇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주기를 바란단다."

       도덕적이라는 것과 자발심

  어디선가 이런 이야기가 들려올 것 같군요.

  "도덕 시간에 제대로 배웠다면 케이크 한 조각 나눠 먹는 것 정도는 기본 중의 기본이지요. <반야심경>까지 들먹일 것 없이 그냥 도덕을 잘 가르치면 되겠네요, 뭘."

  우리가 <반야심경>의 가르침을 생활의 실마리로 삼는 데 있어 주의했으면 하는 것은 이처럼 '도덕'과 '종교'를 혼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도덕에 기반을 둔 행위를 종교심에서 나온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도덕이란 이른바 '타자로부터 강제되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종교심은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반야심경>도 그렇지만 불교가 가르치는 것은 도덕적인 견해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마음과 행위가 중요합니다
  즉, 먹는 것을 곁에서 구경만 하는 게 딱하니까 케이크를 나눠주는 것은 도덕입니다 또 경로석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기 때문에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 역시 도덕적인 사고방식입니다. 물론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반드시 종교심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경로석이니까 자리를 꼭 양보해야 한다든가 젊은이는 경로석에 앉아서는 안 된다는 사고방식에서는 참된 배려나 선한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이러한 도덕적인 얽매임에서가 아니라 순수한 마음으로 그렇게 하는 게 마음이 흐뭇하다거나 그렇게 해주고 싶어서 자연스럽게 행동이 나오는 자발적인 마음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케이크 한 조각을 둘이 나눠 먹으면 훨씬 더 맛있게 느껴진다고 말은 쉽게 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뜻밖에도 무척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한 사람당 하나씩 먹는 게 맛있을 것이고, 한 사람당 두 개씩이라면 더 더욱 좋을 것입니다. 둘이 케이크 한 조각을 나눠 먹으면서 훨씬 맛있다는 생각을 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케이크 한 조각을 둘이 나눠 먹을 때 훨씬 맛있게 느껴지는 마음을 길러줄 수 있을까요?

  이 뒷 구절은 일부러 적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이 저자著者의 의견과 같을 수는 없으니까 말입니다.

  밤이 깊어갑니다. 사무실에서 끝내지 못하고 가져온 일이 있어 글을 줄여야겠습니다.
  그럼... 좋은 밤 되세요.

     내 마음이
     당신을 향해
     언제 열렸는지
     시립기만 합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논둑길을 마구 달려보지만
     내달아도 내달아도
     속떨림은 멈추지 않습니다
     하루종일 시도 때도 없이
     곳곳에서 떠올라
     비켜 주지 않는 당신 얼굴 때문에
     어쩔 줄 모르겠어요
     무얼 잡은 손이 마구 떨리고
     시방 당신 생각으로
     먼 산이 다가오며 어지럽습니다
     밤이면 밤마다
     당신을 향해 열린
     마음을 닫아보려고
     찬바람 속으로 나가지만
     빗장 걸지 못하고
     시린 바람만 가득 안고
     돌아옵니다.


댓글 '2'

세실

2002.04.07 00:21:12

스스로 우러나오는 선한 마음 ....너무 힘든 일인것 같아요. 뒷부분이 궁금하여 "차나 한잔 들고 가시게" 사서 읽어야겠네요. 오늘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에 옛노래를 들었답니다. 토미님도 비를 보며 추억속에 젖어든 것 같아요.

운영2 현주

2002.04.07 04:05:51

주말 잘보내세요.......토미님.세실님...^^ 제가 불교라 그런지 오늘글은 더더....맘에 와닿는듯......호호~ 좋은 글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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