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샘
준상이가 없는 곳에서.. (1)
작성일: 2002/07/09 04:02
작성자: 녹차향(ippnii76)


준상이와 만나기로 한 날.. 12월 31일..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그 곳에 갔다.
어느새.. 내 마음 전부를 차지해버린 아이..
그런 말은 안했지만.. 나를 좋아한다는 고백의 말을 기대하며..
그리고.. 나도.. 준상이에게 고백할 말을 준비하며..

연말을 즐기러 나온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준상이를 찾고있다.
눈이 내린다...
하나 둘씩 내리던 눈은.. 이제 함박눈이 되어 세상을 온통 하얗게 만들고 있다.
분홍색 벙어리 장갑을 낀 손과 아무것도 끼지 않은 손을 나란히 펼쳐본다.
이따.. 준상이 오면 장갑 선물 해야겠다.. 후후.
손이 시려워 얼른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런데.. 준상이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거리에 사람들도 점점 줄어간다..
후.. 추워..
언발을 동동 굴러본다.
준상이 너.. 왜 안오는거야.. 벌써 몇시간째 기다리고 있는데..
못 오는건가..? 전화해볼까?
어..? 뭐야.. 준상이네 집 전화번호도 모르고 있었잖아..?
그러고 보니.. 준상이네 집이 어딘지도 모르고 있었네..?
너무 빨리 나왔나..?
맞다. 어쩌면 내가 나오고 나서.. 못온다고 전화했을지도 모르는데..
얼른 근처 공중전화로 달려갔다.
엄마가 전화를 받자마자 호통을 치신다.
여자애가 지금 몇신데 아직도 밖에 있어?
아휴.. 엄마.. 중요한 약속있어서 그래. 혹시 나 찾는 전화 없었어?
없었어. 그런데 너 지금 어디니?
어.. 알았어. 빨리 갈께..
툭..
터덜터덜.. 가로등 밑으로 다시 돌아왔다.
괜히 발끝으로 바닥의 흙을 쳐내본다.
뭐야.. 연락도 없고.. 왜 안오는거야.. 치.. 확 그냥 갈까부다.

집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안오려나봐..
그런데.. 내가 가고나면.. 곧바로 준상이가 올 것 같다.
다시 돌아서 가로등 밑으로 돌아왔다.
몇번이나 돌아섰다가.. 다시돌아오기를 수차례..
아직도 준상인 오지 않는다.

갑자기 사람들의 환호성에 고개를 번쩍들었다.
10! 9! 8! .... 5! 4! 3! 2! 1!.. 와!!!!
벌써 12시가 된건가..
제야의 종소리가 길거리TV에서 울려퍼진다.

유진아...

준상이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는데...
주위를 둘러봐도.. 환호하는 사람들 뿐.. 준상이는 보이지 않는다.
잘못 들은건가..?
가슴이 싸..하게 쓰려온다..
툭.. 눈물 한방울이 떨어진다.
손바닥으로 얼른 눈주위를 쓸어내렸다.
슬프지도 않은데.. 왜 눈물이 나지..?
가슴 언저리를 손으로 꾸욱 눌렀다.
이상하게 답답해진다.. 툭툭.. 주먹으로 두드려보았다.
그래도.. 답답해진 가슴은 풀리지 않는다.
후.. 정말.. 기분이 이상하네..? 왜 이러지..?

터덜터덜.. 집까지 걸어왔다.
살짝 문을 열고.. 들어갔다.
거실에 엄마가 앉아계신다.
유진아! 너.. 지금 몇시야?
죄송해요.. 엄마.
엄만 몇마디 더 야단치려다.. 내 표정을 보시곤 멈칫하신다.
무슨 일 있었니?
아냐.. 늦게 들어와서 죄송해요. 나 들어갈께.

불도 켜지 않고..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준상이 너.. 내일 만나면 가만 안둘꺼야. 치..
숙녀를 추운데서 몇시간이나 기다리게하고..
후.. 근데.. 정말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번쩍 눈을 떴다.
외출했던 옷차림 그대로다.
이런.. 그냥 자버렸네?
근데 지금 몇시야?
시계를 쳐다보았다.. 으아.. 이런 또 늦었잖아! 엄마!

버스에서 내려 헐레벌떡 뛰었다.
살짝.. 담에 숨어 교문을 살폈다.
어..? 가가멜이 웬일이야? 아무도 없네?
오늘.. 재수다.
느긋하게 교문을 통과했다.

교실까지 걸어가면서.. 준상이에게 할 말을 생각했다.
막 화낼까? 음.. 그럼 준상이가 너무 미안해하겠지?
그럼.. 나도 못나갔다고 그럴까?

교실문을 열었다.
분위기가.. 이상하다.
흐느켜 우는 아이들.. 심장이 두근거린다.
얼른 아이들 사이에서 준상이를 찾았다.
비어있는 준상이 자리..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설마.. 준상이한테.. 무슨 일이..?
유진아...
진숙이가 울며.. 날 부른다.
무슨.. 일이야? 응..?
준상이.. 준상이가 죽었대.. 어제.. 교통사고로.. 흑..

머릿속이 하얘진다.
그럴리가 없어..! 준상이가.. 어떻게 됐다고..? 뭐..? 죽었..다고..?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냐.. 그럴리가 없어.. 나랑 만나기로 했었는데..
나랑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안 지킬리가 없어.
날 기다리고 있을꺼야.. 거기에.. 거기에서 나 기다리고 있을꺼야..
가야돼.. 빨리.. 준상이한테 가야해..

누군가 내 팔을 잡아당긴다.
유진아! 정신차려!
상혁아..? 놔! 이거 노란말야!
나.. 가야돼.. 준상이한테 할말 있단말야.. 할말 있어..
나.. 약속했단 말야.. 그런데...
계단에 털썩 주저앉았다.
준상아...? 준상아... 나.. 어떻게 된거지..?
나.. 니 얼굴.. 기억이 안나.. 니 얼굴.. 생각안나.. 어떡해... 응..?
너 기억해주기로 약속했는데.. 근데.. 기억이 안나.. 준상아..

상혁이에게 끌려 교실로 돌아왔다.
훌쩍이는 아이들 울음소리가.. 멀게 들린다.
자리에 앉아 멍하니.. 칠판만 쳐다보았다.
머릿속이 온통 하얗다.. 아무 생각도.. 아무 느낌도 없다..

선생님이 들어오신다..
차렷..!
됐다.. 그냥 앉아라.
후.. 모두들.. 알고 있겠지만.. 준상이가.. 어제 사고로.. 후..
무슨.. 준상인 저기에...
무심코 준상이 자리로 고개를 돌렸다.
누가 가져다 놨는지.. 하얀 국화꽃다발이 준상이 대신.. 놓여있다.
눈물이 고인다..
아... 준상인 죽었다고 했지... 그랬지...
힘없이 고개를 돌렸다.
선생님도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마냥 슬퍼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게 현실이야.
모두들.. 힘들겠지만.. 그래도 힘들 내라.
오늘 수업은.. 2교시부터 하기로 했다.
... 이따.. 보자..

선생님이 나가시고.. 조금씩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간간이 준상이 이름이 들리고.. 흐느끼는 소리도 들리고..
나만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하다.
익숙했던 모든 것들이.. 낯설게 느껴진다.
친구들의 얼굴이.. 낯선 사람들처럼 보인다.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들어오신다.
칠판에 탁탁.. 부딪치는 분필소리..
책 넘기는 소리.. 아이들의 대답소리..
모든 것이.. 예전과 똑같다.
또 종소리가 나고.. 왁자지껄한 아이들의 목소리..
또..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또.. 똑같은 일의 반복..
멍하니.. 그들을 바라본다.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구나.. 다들.. 그렇구나..
그런데.. 왜 나만.. 이렇지..?
나만 이곳에 속하지 못하고.. 다른 곳에 있는 느낌..
여긴.. 어디지..?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얹는다.
소스라치게 놀라서 돌아보았다.
어..? 어.. 상혁아..
유진아.. 괜찮아..? 수업끝났어.. 가자..
... 응..? 어디..?
가자.. 갈데가 있어..
어...
허공에 붕.. 뜬 기분으로.. 상혁일 따라 나섰다.


작성일자 2002-11-02 14:3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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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연가 사람들 녹차향 글방펌

그냥 올리다 보니 앞뒤없이 순서가 바뀌였네요
그냥  유진이가 얼마나 힘든 10년을 보냈는지 보세요
드라마에서 나오지 않았던 부분이죠









댓글 '3'

운영자 현주

2003.06.21 22:58:19

저 저때 정말 많이 울었었다눈...........흑흑.. 계단에서 준상이가 기억나지않는다고 울때.....아마.. 겨울연가 전 회를 통해 그때가 젤루 슬펐던거 같다눈.......흑흑.. 너무 후다닥 10년이 지나버려서 아쉬웠어요~~ 고마워요 소리샘님..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코스

2003.06.22 00:09:40

현주님...저두요..저두 그랬어요.
유진이는 얼마나 설레이는 마음으로 준상이를 기다리던 시간들이란 말인가....
너무 일찍 이별을 하는게 못내 아쉬웠던 장면들이였어요.
소리샘님....앞뒤가 바뀌여도 그때의 감성이 그대로 전해진답니다.
겨울연가는 저에게 소중한 추억이랍니다.
다시 한번 도 되새기질 하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소리샘님...행복한 주일을 보내세요.^0^

2003.06.24 06:17:43

오랫만에 뵙네요.
이 장면만큼은 다시보고 싶지 않은 부분일만큼
제 마음까지 상처입을까봐...
절대 다시 보지않는 부분입니다.
휴...이렇게 또 보게 되었네요....

좋은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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