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의 행복론>中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삶의 목표는 행복에 있다.
종교를 믿든 안 믿든, 또는 어떤 종교를 믿든
우리 모두는 언제나 더 나은 삶을 추구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삶은 근본적으로
행복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행복은 각자의 마음 안에 있다는 것이
나의 변함 없는 믿음이다.
이 책의 맨 첫 장에 쓰여있는 글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 장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당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집과 돈과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당신이 이미 행복하다면 그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스타지우》에 오시는 여러 님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세상에 왔습니다.
이 아침에 어떤 주제로 글을 쓸까 생각하다가... '신문'을 주제로 적어보기로 하였습니다.
손석춘의 <신문 읽기의 혁명- 편집을 읽어야 기사가 보인다>中에 보면 신문을 어떻게 읽어야 제대로 읽을 수 있는지 그 방법이 나옵니다.
편집을 해체한 뒤 재편집하여 읽으라는 말에
상당히 부담을 느끼는 독자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따져보자.
48면에 이르는 신문지면을
1면 머릿기사부터 48면 맨 하단의 1단 기사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읽는 독자가 과연 있을까.
어차피 독자들은 신문기사들을 골라 읽는다.
바로 그 골라서 취사선택하는 것,
그것이 다름 아닌 독자들의 편집행위이다.
다만 그것을 기존의 신문 편집체제 속에서
편집자가 편집한 표제와 단에 따라 읽지는 말라는 것이다.
독자 자신이 주체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리며 읽어야 한다.
독자 개개인의 입장에서 신문을 재편집할 때
지면 읽기란 신문 편집자와 한판 장기를 두는 것과 같다.
상대방이 둔 수를 보며 그 의중을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 신문만 볼 경우보다 다른 신문과 비교해서 읽을 때
해체 작업이 쉬운 것은 물론이다.
그래서 적어도 신문의 성격이 확연하게 다른
두 신문을 동시 구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구독료가 부담될 수는 있지만
삶의 현실을 정확히 보기 위한 '투자'로 여기자.
'신문 읽기'에 대한 안내문이라 보아도 무방할 거 같습니다. 신문을 읽는 방법에 대해서는 여러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손석춘은 언론의 보이지 않는 장막에 갇힌 상태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진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보여지는 허상을 깨고, 보아야 할 실상을 꿰뚫는 올바른 '신문 읽기'가 필요한 시대라는 것입니다. 20년 동안 신문기자이었던 그에게도 올바른 신문 읽기는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모로이 가오루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편지'라는 부제가 달린 <남자란 무엇인가>중에 보면 신문칼럼을 꼭 읽어야만 하는 이유가 나옵니다.
설사 비스듬히 읽어도 좋으니
신문을 읽어보는 것을 아침의 일과로 삼았으면 좋겠다.
신문을 제대로 읽지 않는 사람들도
칼럼만은 읽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기 바란다.
특히 나이가 많은 사람들 중에
칼럼 애독자가 많기 때문에
회의 같은 때에 화제에 오르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나 역시 젊은 사람이 칼럼을 읽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되면
그 청년을 다시 보고 싶어진다.
너도 신문칼럼만은 매일 읽어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이 책은 40년 동안 샐러리맨으로 활동한 저자가 역시 샐러리맨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아들에게 주는 처세론입니다. 평범하고 실용적인 인생 철학을 큰 과장 없이 적어 놓은 책입니다. 신문을 제대로 읽는 것이 사회생활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설명하고 그 방법까지 제시해 놓고 있어서, 저같이 어른들과 만나는 일이 잦은 이들에게는 매우 고맙고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박완서의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중에 보면 정말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습니다.
엄마는 그이를 "사람이 한결같더라"라고 평했다.
나는 엄마의 그런 평이 적절하다고 생각했고
마음에도 들었다.
지섭하고는 달랐다.
대화가 끊기는 적도 거의 없었지만
잠시라도 끊기면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지섭이는 그가 말 안 하는 동안
나도 말 안 하는 걸 참지 못했지만,
만일 삼 분 만 참아준대도
그동안 무슨 생각을 했나를 말해야만 했다.
그게 싫어서라도 끊임없이 지껄여야 했다.
한결같은 사람! 최고의 찬사입니다. 친구로부터, 직장 상사와 부하로부터, 친지와 이웃으로부터 한결같은 사람이라는 평판을 듣는 사람이라면 더 볼 것이 없습니다.
저도 이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당분간 이 곳에 오지 못할 거 같습니다.
진행중인 일이 있는데, 어떻게 결정될 지를 몰라서 말입니다.
그리고 몇 일 일본에도 갔다와야 하고, 여러 가지로 겹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럼... 저 없는 동안 모두 건강하시고 더 아름다워지시고, 씩씩해지세요.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정호승
이 세상 사람들 모두 잠들고
어둠 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 들 때
홀로 일어난 새벽을 두려워 말고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겨울밤은 깊어서 눈만 내리어
돌아갈 길 없는 오늘 눈 오는 밤도
하루의 일을 끝낸 작업장 부근
촛불도 꺼져가는 어둔 방에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절망도 없는 이 절망의 세상
슬픔도 없는 이 슬픔의 세상
사랑하며 살아가면 봄눈이 온다.
눈 맞으며 기다리던 기다림 만나
눈 맞으며 그리웁던 그리움 만나
얼씨구나 부둥켜안고 웃어보아라.
절씨구나 뺨 부비며 울어보아라.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어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
봄눈 내리는 보리밭길 걷는 자들은
누구든지 달려와서 가슴 가득히
꿈을 받아라.
꿈을 받아라.
삶의 목표는 행복에 있다.
종교를 믿든 안 믿든, 또는 어떤 종교를 믿든
우리 모두는 언제나 더 나은 삶을 추구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삶은 근본적으로
행복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행복은 각자의 마음 안에 있다는 것이
나의 변함 없는 믿음이다.
이 책의 맨 첫 장에 쓰여있는 글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 장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당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집과 돈과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당신이 이미 행복하다면 그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스타지우》에 오시는 여러 님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세상에 왔습니다.
이 아침에 어떤 주제로 글을 쓸까 생각하다가... '신문'을 주제로 적어보기로 하였습니다.
손석춘의 <신문 읽기의 혁명- 편집을 읽어야 기사가 보인다>中에 보면 신문을 어떻게 읽어야 제대로 읽을 수 있는지 그 방법이 나옵니다.
편집을 해체한 뒤 재편집하여 읽으라는 말에
상당히 부담을 느끼는 독자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따져보자.
48면에 이르는 신문지면을
1면 머릿기사부터 48면 맨 하단의 1단 기사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읽는 독자가 과연 있을까.
어차피 독자들은 신문기사들을 골라 읽는다.
바로 그 골라서 취사선택하는 것,
그것이 다름 아닌 독자들의 편집행위이다.
다만 그것을 기존의 신문 편집체제 속에서
편집자가 편집한 표제와 단에 따라 읽지는 말라는 것이다.
독자 자신이 주체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리며 읽어야 한다.
독자 개개인의 입장에서 신문을 재편집할 때
지면 읽기란 신문 편집자와 한판 장기를 두는 것과 같다.
상대방이 둔 수를 보며 그 의중을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 신문만 볼 경우보다 다른 신문과 비교해서 읽을 때
해체 작업이 쉬운 것은 물론이다.
그래서 적어도 신문의 성격이 확연하게 다른
두 신문을 동시 구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구독료가 부담될 수는 있지만
삶의 현실을 정확히 보기 위한 '투자'로 여기자.
'신문 읽기'에 대한 안내문이라 보아도 무방할 거 같습니다. 신문을 읽는 방법에 대해서는 여러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손석춘은 언론의 보이지 않는 장막에 갇힌 상태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진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보여지는 허상을 깨고, 보아야 할 실상을 꿰뚫는 올바른 '신문 읽기'가 필요한 시대라는 것입니다. 20년 동안 신문기자이었던 그에게도 올바른 신문 읽기는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모로이 가오루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편지'라는 부제가 달린 <남자란 무엇인가>중에 보면 신문칼럼을 꼭 읽어야만 하는 이유가 나옵니다.
설사 비스듬히 읽어도 좋으니
신문을 읽어보는 것을 아침의 일과로 삼았으면 좋겠다.
신문을 제대로 읽지 않는 사람들도
칼럼만은 읽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기 바란다.
특히 나이가 많은 사람들 중에
칼럼 애독자가 많기 때문에
회의 같은 때에 화제에 오르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나 역시 젊은 사람이 칼럼을 읽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되면
그 청년을 다시 보고 싶어진다.
너도 신문칼럼만은 매일 읽어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이 책은 40년 동안 샐러리맨으로 활동한 저자가 역시 샐러리맨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아들에게 주는 처세론입니다. 평범하고 실용적인 인생 철학을 큰 과장 없이 적어 놓은 책입니다. 신문을 제대로 읽는 것이 사회생활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설명하고 그 방법까지 제시해 놓고 있어서, 저같이 어른들과 만나는 일이 잦은 이들에게는 매우 고맙고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박완서의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중에 보면 정말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습니다.
엄마는 그이를 "사람이 한결같더라"라고 평했다.
나는 엄마의 그런 평이 적절하다고 생각했고
마음에도 들었다.
지섭하고는 달랐다.
대화가 끊기는 적도 거의 없었지만
잠시라도 끊기면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지섭이는 그가 말 안 하는 동안
나도 말 안 하는 걸 참지 못했지만,
만일 삼 분 만 참아준대도
그동안 무슨 생각을 했나를 말해야만 했다.
그게 싫어서라도 끊임없이 지껄여야 했다.
한결같은 사람! 최고의 찬사입니다. 친구로부터, 직장 상사와 부하로부터, 친지와 이웃으로부터 한결같은 사람이라는 평판을 듣는 사람이라면 더 볼 것이 없습니다.
저도 이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당분간 이 곳에 오지 못할 거 같습니다.
진행중인 일이 있는데, 어떻게 결정될 지를 몰라서 말입니다.
그리고 몇 일 일본에도 갔다와야 하고, 여러 가지로 겹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럼... 저 없는 동안 모두 건강하시고 더 아름다워지시고, 씩씩해지세요.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정호승
이 세상 사람들 모두 잠들고
어둠 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 들 때
홀로 일어난 새벽을 두려워 말고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겨울밤은 깊어서 눈만 내리어
돌아갈 길 없는 오늘 눈 오는 밤도
하루의 일을 끝낸 작업장 부근
촛불도 꺼져가는 어둔 방에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절망도 없는 이 절망의 세상
슬픔도 없는 이 슬픔의 세상
사랑하며 살아가면 봄눈이 온다.
눈 맞으며 기다리던 기다림 만나
눈 맞으며 그리웁던 그리움 만나
얼씨구나 부둥켜안고 웃어보아라.
절씨구나 뺨 부비며 울어보아라.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어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
봄눈 내리는 보리밭길 걷는 자들은
누구든지 달려와서 가슴 가득히
꿈을 받아라.
꿈을 받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