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의 취미는...

조회 수 3044 2002.04.23 07:07:52
토미
  법정法頂의 <무소유>中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굵직굵직한 자리가 바뀔 때마다 소개되는
     면면(面面)들의 취미를 보면 하나같이 골프라고 한다.
     언제부터 이 양반들이 이렇게들
     골프만을 좋아하게 됐을까 싶을 정도다.

     바람직한 취미라면 나만이 즐기기보다
     고결한 인품을 키우고 생의 의미를 깊게 하여,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오늘 나의 취미는 끝없는, 끝없는 인내다.

  취미란 스스로 좋아서, 그리고 하면 할수록 즐거워지는 일을 말합니다. 끝없는 인내를 취미로 삼을 정도면 가히 경지에 오른 분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 경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자기 인품도 키우고 이웃과도 함께 할 수 있는 평생 취미 하나쯤 가지는 것도 좋은 인생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법정 스님이 쓰신 책 중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제목을 가진 에세이가 있습니다.
  스님이 지난 20여년간 쓰신 글 가운데에서도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와 자연에 대한 글들만을 모아 시인 류시화가 엮은 책입니다. 이 책을 보면 '산중시인'이라고 불리우는 법정 스님의 자연사랑, 혹은 사랑을 뛰어넘은 일체감과 차 오르는 충만함을 한껏 느낄 수 있습니다.

  책은 봄 여름 가을 겨울 4개의 장과, 그동안 스님이 주위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로 이루어진 마지막 장으로 짜여져 있습니다. 스님은 이 글 속에서 오랜 수행생활로 자연스레 몸에 밴 생명존중의 정신을 바닥에 깔고 사계절의 자연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개인적인 단상과 다듬어지지 않은 표현이 담겨 있는 편지글을 책에 싣는 것을 내켜하지 않았으나, 그 속의 살아있는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다는 류시화 시인의 거듭된 간청으로 선을 보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안에 나오는 내용의 일부를 적어보겠습니다.

  허리를 펴고 좌정한 채 열린 귀로 우주의 맥박과 숨소리를 듣는다. 눈으로는 새벽 달빛의 그림자를 맡는다. 그리고 별빛처럼 또렷또렷해진 맑은 정신으로 세월을 읽는다. -'봄'중에서

  자연은 말없이 우리에게 많은 깨우침을 준다. 자연 앞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얄팍한 지식 같은 것은 접어두어야 한다. 그리고 입을 다물어야 한다. 그래야 침묵 속에서 '우주의 언어'를 들을 수 있다. -'여름'중에서

  꽃이 피는 소리를, 시드는 소리를, 지는 소리를, 그리고 때로는 세월이 고개를 넘으면서 한숨쉬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므로 듣는다는 것은 곧 내 내면의 뜰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가을'중에서

  제가 좋아하는 고 정채봉님이 그렇게나 좋아하시던 정호승님이 쓴 <모닥불>이라는 제목의 '어른들이 읽는 동화'라는 부제가 붙은 소설이 있습니다.

  먼저 이 책을 설명하자면...

  어른을 위한 동화란 왜 필요한 것일까... 동화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쓰여지는 것이 아닌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순간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동화를 읽지 않게 됩니다. 저부터 그러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 읽는 동화는 어린 시절에 읽었던 동화와는 색다른 느낌을 주게 마련입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이라고 여겼던 것들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면서 자신을 겸허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에 그런 거 같습니다.

  지은이가 펴내고 있는 어른을 위한 동화시리즈는 바로 이런 역할을 해내고 있습니다. <모닥불>에서 지은이는 사랑과 주변과의 관계,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랑에는 고통이 따른다는 것, 그에 따르는 희생조차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걸 말하고 있습니다.

  '타조'에서는 날기가 꿈인 선조들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한 마리의 타조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타조는 간절히 기도를 하다가 독수리를 진정으로 사랑하면 날 수 있을 거라는 응답을 얻고 고통이 따르더라도 독수리를 사랑하기로 합니다. 결국 타조는 두 다리를 모두 독수리에게 바치게 되고 마침내 날고자 하는 꿈마저 버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순간 비로소 타조는 날게 됩니다.

  독수리를 사랑해야 날 수 있는데 날고자 하는 욕망을 사랑하기에 날 수 없었던 타조는 바로 요즘 사람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 대상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의 욕망을 사랑하는 모습. 그러나 자신의 욕망을 버릴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지은이는 자신만이 특별하고 최고라는 생각, 즉 과신이 가져오는 불행을 보여주면서 그러한 마음을 갖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남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만을 내세우면서 상처받고 어긋나는 관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월식'에서 지구와 달이 서로 자신 때문에 우주가 아름답다고 주장하다가 다투게 되고, 결국은 사랑하면서도 서로의 주변을 그리며 계속 돌다가 월식 때만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그러합니다.

  안도현 시인이 골라낸 이 책에서 가장 빛나는 구절이 '상처'중에서

     "남한테 준 상처가 바로 너의 상처야."

  라는 구절이라는 것에 저도 공감을 합니다. 알게 모르게 남에게 주는 상처들이 바로 나 자신의 상처가 되어 남는다는 것. 그렇게 생각할 때 조금이라도 남에게 상처를 덜 입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말입니다.

  '자살바위'에서는 본래 솔 바위였으나 자살바위로 불리던 바위가 복 바위로 불리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남들이 부르는 이름으로 규정되어지지 않고 자신의 노력으로 이를 극복하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타인에 의해 규정되어진 것들을 넘어서서 진정 자신의 모습을 찾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전하고 있습니다

  지은이의 글과 더불어 짝을 이루는 박항률 화백의 그림은 글의 맛을 살려주고 여운을 남기는데 큰 역할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책 속의 그림들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고요해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잘 맞는 궁합의 연인처럼 어우러진 글과 그림이 <모닥불> 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뗏목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나는 더 이상 소녀를 보지 못하고 모닥불이 되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디선가 겨울 강가에 피어오르는 모닥불을 보시면 소녀를 기다리는
     내 기다림이 타오르는 것이라고 생각해주세요.

  화요일 아침입니다.
  몸이 그렇게 상쾌하지가 않습니다.
  아무래도 잠이 좀 부족하거나 허리의 통증 때문인 거 같습니다.
  법정스님의 말처럼 오늘 저의 취미가 끝없는, 끝없는 인내가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이웃과 함께 할 수 있는 평생 취미를 발견하는 하루 되세요.


댓글 '5'

밥통

2002.04.23 07:13:55

토미님,끝없는 인내라고요,,저의 삶도 아마도 취미가 끝없는 인내란 생각이 이 글을 읽고 나니 듭니다..정망 고통스런 인내인데 ,,언제쯤이면 취미로 완전한 취미로 여겨질 수 있을까요...좋은 글 감사합니다..존하루 되세요~~

포도좋아

2002.04.23 08:34:25

저도 법정스님, 고 정채봉님 정말 좋아하는데...

포도좋아

2002.04.23 08:35:12

날씨가 흐린데 좋은글 감사드려요...끝없는 취미가 인내라는 글.. 참 인상적이네요...

운영2 현주

2002.04.23 11:29:13

전 인내심 무진장 부족한데......아흐흑~ 아줌마다보니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줄때.... 저도 모르게....제가 더 감명받게 될때가 있더군요... 요즘 동화들 어른들이 읽어도 가슴뭉클한 좋은 책들두 많구요.. 단순하지만 의미하는 뜻은 깊죠.....이웃과 함께 할수있는 평생취미라.....전 이미 찾은듯.....바루 울 스타지우~ 이것도 맞죠? 좋은 하루 되세요~

세실

2002.04.24 00:27:37

남한테 준 상처가 바로 나의 상처....란 말을 마음에 새깁니다. 토미님 정말 잠이 부족하실것같아요. 오늘 밤은 숙면을 취하셨으면하는 바램을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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