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게 떠나기...

조회 수 3023 2002.04.06 05:35:35
토미
  박찬익의 〈그래도 좋은 인연〉中에서 골라 본 글의 서두書頭입니다.

     꽃은 언젠가 꼭 지긴 하되
     은은하거나 찬란하거나
     제 성품대로 향기 피우다가
     한번쯤 마음 흔들어 놓고 진다.

     해는 뜨거나 지거나 늘 그런 해라도
     하루에 한번은 붉은 빛 길게 늘이며
     뒤에 남는 모든 것을 위해
     간절하고 찬란하게 축원하다가
     한번쯤 마음 흔들어 놓고 기운다.

     꽃 지고 해 지되 그렇게 지고 기울 듯
     나도 한번쯤 그대 위한 한 줄의 글
     떨리는 마음 아름다운 영혼 고르고 골라
     아낌없이 내보이다가
     한번쯤 그대 마음 흔들어 놓고 떠나고 싶다.
     삶에, 미련에, 떠나는 모든 것에 대해
     연연하지 않으며 가다가도
     그대와 함께
     가슴 저리게 흔들리며 지고 싶다

  법정 스님이 쓰신 <버리고 떠나기>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사람이 같은 사람을 피해서 살아야 하다니 남들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진정으로 그 사람을 위해서 사람으로부터 멀리 떠나 살고 싶은 심정입니다. 홀로 있을수록 함께 있다는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땅에 떨어지는 낙엽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냥 맞이한다. 그것들은 삶 속에 묻혀 지낼 뿐 죽음 같은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것들은 그때 그곳에 모든 것을 맡기고 순간 순간을 있는 그대로 산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 인간들뿐인데 그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삶은 순간 순간 새롭게 발견되어야 할 훤출한 뜰이다.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 그러므로 차지하고 채우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침체되고 묵은 과거의 늪에 갇히는 것이나 다름이 없고, 차지하고 채웠다가도 한 생각 돌이켜 미련 없이 선뜻 버리고 비우는 것은 새로운 삶으로 열리는 통로다.

  법정 스님의 글은 어느 시간, 어느 계절에 읽어도 새롭게 다가옵니다. 스님의 글을 읽고 있으면, 눈을 뜰 때마다 새롭게 다가서는 자연의 경이로움을 비롯해 세속의 명예와 편안함을 버리고 혼자서 살아가는 구도자의 청빈한 삶을 느낄 수 있습니다.

  스님은 자신이 쓴 글을 통해서 전통적 가치관을 낡은 것, 버려야 할 것으로 치부하는 현실과 급속한 사회 변화에 맞춰 양식과 가치관까지도 제 마음대로 바꾸는 세태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돈과 명예를 최고의 가치로 치켜세우는 동안 자신을 돌아보는 삶의 여유까지 잃었다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시종일관 스님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버리고 떠나기'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욕심을 버리고 떠날 때, 사람은 자기 내면의 목소리와 진실하게 만날 수 있으며 지금보다 조금씩만 더 검소하게, 지금보다 조금씩만 욕심을 버릴 때 삶은 더 여유로워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책은 자연에 묻혀 나무, 새, 바람과 달, 들짐승을 벗삼아 속 깊은 대화를 나누는 스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버리고 떠나기'가 결코 쉽지 않은 시대에 '진정한 삶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아침에 읽으면 좋을 글을 본문中에서 적어보겠습니다.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中에서

  새벽 예불을 마치고 나니 문득 비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간밤에는 처마끝에 풍경 소리가 잠결에 들리던 걸로 미루어 바람이 불었던 모양이다. 이제는 풍경 소리도 멎은 채 소근소근 비 내리는 소리뿐이다. 밖에 나가 장작더미에 우장을 덮어주고 뜰가에 내놓았던 의자도 처마밑에 들여놓았다.

  그리고 요즘 막 꽃대가 부풀어오르는 수선화의 분도 비를 맞으라고 밖에다 내놓았다. 비설거지를 해놓고 방에 들어와 빗소리에 귀를 모으고 있으니 참 좋다. 오랜만에 어둠을 적시는 빗소리를 들으니 내 마음이 말할 수 없이 그윽해지려고 한다.

  우리가 무슨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삶의 중요한 한 몫이다. 그 소리를 통해서 마음에 평온이 오고 마음이 맑아질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소리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곧 자기 내면의 통로로 이어진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때 생각은 딴 데다 두고 건성으로 듣지 말 일이다. 그저 열린 마음으로 무심히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무심'이란 말에조차 매이지 말고 그저 열린 귀로 듣기만 하라. 소리 없이 내리는 비가 메말랐던 마음밭을 촉촉이 적셔줄 것이다.

  얼마 전 서울에 갔을 때 마침 삼불 김원룡 박사의 문인화전이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열리던 참이었다. 여느 직업적인 화가의 그림보다 밝고 담박한 선과 색채에 유머가 있어, 보는 마음을 한없이 즐겁게 했다. 이 또한 그 날 하루의 내 조촐하고 향기로운 삶을 이루게 했다.

  1백여 점 되는 그림 가운데 관음상이 두 폭 있었는데, 그 중 한 폭이 그림도 뛰어나고 화제도 좋아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내 기억에 자리하고 있다. 작년 부처님 오신 날에 그린 그림인데, '觀世音 聽世音 於慈悲 浮世萬物 無非觀世音菩薩'이란 화제를 달고 있었다.

  '세상의 소리를 살피고 세상의 소리에 귀기울여 자비를 베푸니 이 풍진 세상의 만물이 곧 관세음보살 아닌 것이 없더라.'

  경전에 따르면 관세음보살은 듣는 일을 통해 깨달음을 이루었다고 했다. 이와 같이 어떤 현상이나 사물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우리 삶에 큰 의미를 지닌다.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中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는 전날 한 것을 똑같이 되풀이했고,
     앞으로도 그래야만 했다.
     똑같은 종류의 산봉우리를 넘고
     똑같이 꼬불꼬불한 길을 지나서
     똑같이 끝없는 숲을 통과해야 했다.

  인생도 산행山行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똑같은 밥, 똑같은 일, 똑같은 사람의 바퀴를 끝없이 돌고 돕니다. 그러나 그 밥 한 숟갈에 담긴 깊은 맛, 같은 일, 같은 사람이 주는 기쁨과 고마움을 알아차리는 순간, 행복은 우리 가슴에 풍요롭게 찾아오는 거 같습니다.
  님들도 사소한 것에서 기쁨과 고마움을 느꼈으면 합니다.
  요즘은 유달리 책의 내용과 책을 소개하는 글이 많네요.
  일부러 그렇게 적는 것은 아닌데...

  토요일 아침입니다.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는 하루였으면 합니다.
  그럼... 풍요로운 하루 되세요.


댓글 '8'

세실

2002.04.06 08:46:50

비가 오는 토요일, 봄꽃에겐 떨어짐을 재촉하는 비지만 시들은 대지에는 생명을 싹트게하는 단비겠지요. 삭막한 정서에 한줄기 단비같은 토미님의 글로 시작하는 토요일이라 오늘은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네요.

하얀사랑

2002.04.06 09:25:34

토미님... 편안한 글 읽고 갑니다,,,늘 그렇듯^^행복하세요,, 세실님 반가워요^^좋은 일 가득하세요

흠냐~

2002.04.06 10:32:06

오늘도 역쉬~ 맘을 채워주는 좋은글 읽고 갑니다. 감사해요..글고 토미님 나이가 많으신분 아니어여??..ㅋㅋㅋ..여기서 토미님 글 일고 좋은책들을 많이 알게 되어서 동네서점에 몇권의 책을 사러 갔는데 쥔아주머니께서 어찌그리 오래된 좋은책들만 아냐구 그러시더라구여..ㅋㅋ..아주머니 20년전에 대학다닐때 즐겨읽던 좋은책들이라구..그래서 토미님도 혹시 그정도의 나이가 되신 분이 아닐지..실례가 되었다면 죄송하구여..좋은책 많이 알게 해주셔서 감사하구여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순수지우

2002.04.06 10:38:40

비가 내리는 촉촉한 토요일..인생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을 하게하는 토미님의 좋은글..정말 제 맘의 단비를 내리게하는 멋지고 소중한글,,감사합니다~^^행복한 주말 되세여~*^^*

님사랑♡

2002.04.06 10:56:40

토미님 좋은글 감사합니다. 잊고지냈던 아름다운글들 잘보고있어요

운영1 아린

2002.04.06 12:41:46

정말 책 읽기 힘든데 토미님덕분에 언제나 좋은글귀 감사드려요...

프리티 지우

2002.04.06 17:23:57

아~아직은 무슨말인지 모르겠네요..하지만..무지 좋은글인듯..감사합니다..잘 읽었어요..^^

토미

2002.04.06 23:36:26

흠냐∼님... 저 그렇게 나이 먹지 않았습니다... 동네서점 아주머님 나이 계산대로 하자면 80년대 학번이 되어야 하는데... 전 90년대 학번이거든요... 물론 님보다는 나이가 좀 더 들었겠죠. 그리고 구입하신 책은 잘 읽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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