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없으므로 내 사랑 영원합니다...

조회 수 3036 2002.04.04 23:00:53
토미
  아직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가끔 떠오르는 당신의 향기를 기억하고 싶어요.
  마냥 기대기만 했던 17년의 세월은 아니었지만 응석부렸던 그때가 생각나네요
  이제 하나 둘 당신의 향기를 없애려 애쓰고 있답니다.
  이 집도 옮겨야 하겠지만 아직은 억지로 흔적을 지우고 싶진 않아서요.

  우리가 힘들게 지은 집이잖아요.
  둘이서 심었던 감나무와 모과나무를 기억하고 싶었어요.
  당신이 사온 함박꽃도 철쭉도 갖고 있고 싶어서요.

  자주 웃지요.
  항상 즐거운 삶을 살려고 노력한답니다.
  뭐가 그리 즐겁겠어요 마는 울면서 사는 것보다는 살아남은 자들의 한 의지로 남은 삶을 꾸려나가려고 하지요. 삼 년이란 세월은 십 년처럼 흘러갔지만 고맙게도 지나가기도 하더군요.

  가끔, 잘 있으란 말도 없이 당신이 원망도 되지만, 그 병원 앞을 지날 때마다 고개 돌리며 지나가기도 하지만, 기도 한 번 할 새 없이 떠나보낸 미워질 때도 있지만 언젠가 다음 생에서 좋은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 걸 생각하면 아직 헤어졌다는 것조차 우습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요.

  그래도 우리 사는 동안 무척 아름답고 행복한 나날이었지요. 당신의 사랑이 벅차게 느껴졌더랬습니다. 나에게 모든 걸 남김 없이 다 해주고 간 당신의 목소리가 그립습니다.

  나도 얼마나 당신을 좋아했는지 알고 있지요.
  씩씩하게 살게요.
  울지 않고 살게요.
  애들도 얼마나 씩씩한데요.

  아직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2000. 10. 22.
  당신 아내

  <그대 없으므로 내 사랑 영원합니다.>中에 있는 구절입니다.
  이 책冊은 사랑하는 가족에게 보내는 세상에서 가장 가슴 아픈 편지를 모아놓은 글입니다. 물론 이 편지의 수신인은 이 세상에는 없는 죽은 이들입니다. 다들 꼭 한 가지씩의 사연을 안고 하늘나라에 간 이들... 그들을 누구보다 가장 많이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는 가족들이 쓴 글을 엮어놓은 책입니다.

  어느 편지글에는 편지지 가득 '엄마'가 빼곡이 적혀있는가 하면, "사랑하는 당신, 사랑하는 당신, 정말 몸서리쳐지게 당신이 그립습니다"라며 보고픈 마음을 대신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사랑하는 이를 보내고 난 뒤에는 아무리 불러도... 불러도 채워질 것 같지 않는, 하얗게 증발해버릴 것 같은 그리움만이 남는데도 말입니다.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하늘나라에 부치는 편지를 다 썼을까 싶기도 하고, 또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버티어냈을까 하는 생각에 슬며시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읽은 수필입니다.

  옆자리에 앉은 여자후배가 다 읽은 것을... 제목이 맘에 끌려 빌려서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읽은 책입니다.
  덕분에 점심 이후의 기분은 우울한 잿빛이 되었습니다.

  우울한 잿빛... 같은 기분 하니 또 생각나는 글이 있습니다.
  <마음에 상처 없는 사람은 없지요 - 소중한 사람에게 읽어주고 싶은 33통의 편지>中에 나오는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이 어머니에게 쓴 '눈물은 접어두련다'라는 제목의 편지글입니다.

  고등학생이 되어야 알았다. 남들은 계란 프라이를 그렇게 먹는지. 친구네 집에 놀러가서 저녁을 먹는데 계란 프라이 반찬이 나왔다. 그런데 밥상머리에 앉은 사람은 세 사람인데 계란을 딱 세 개만 프라이한 것이었다.

  장난하나... 했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계란 프라이를 한 사람당 하나씩만 먹느냔 말이다. 누구 코에 붙이라고. 난 그 때까지도 남들도 계란 프라이를 했다 하면 한 판씩은 해서 먹는 줄 알았던 것이다.

  우리 엄마 손은 그렇게 컸다. 과자가 먹고 싶다고 하면 박스째로 사오셨고, 콜라가 먹고 싶다고 하면 1.5리터 패트병으로 몇 박스를 사오셨고, 삼계탕이 먹고 싶다고 하면 노란 찜통 - 그렇다. 냄비가 아니라 찜통이었다 - 에 한 번에 닭을 열댓 마리는 삶아서 우리 식구들 먹이고, 친구들 불러 먹이고, 저녁에 동네 순찰 도는 방범 아저씨들 불러 먹이고 하셨다.

  엄마는 또, 힘이 장사셨다. 자고 일어나면 온 집안의 가구들이 전부 재배치되어 있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집안의 가구 배치가 지겹거나 답답하거나 기분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그냥 그 자리에서 결정해 바로 가구를 옮기기 시작하신다.

  그 때가 새벽 한시라도 상관이 없다. 상상해 보시라. 새벽 세시에 열두 자 장롱을 붙들고 이 방 저 방으로 끌고 다니는, 잠옷 걷어붙이고 목장갑 낀 씩씩한 아줌마의 모습을, 그리고 팬티만 입고 반대편에서 낑낑대는 아들의 모습을...

  재수를 하고도 대학에 떨어져 집에 돌아와 난생 처음 화장실에 숨어 눈물을 훔치고 있을 때, 화장실 문짝을 아예 뜯어내고 밀고 들어오신 것도 우리 엄마가 아니었다면 생각지도 못할 '파워풀한 액션'이었다.

  대학 진학이 인생 최대의 지상 과제인 줄 알던 나이에, 대학에 두 번씩이나 연속 낙방하고 인생 자체가 실패한 것처럼 좌절해 화장실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아들을 보고는, 세상에, 그 문짝을 뜯어내고 들어오시다니...

  이봉걸, 이만기 다 나오라고 그래!

  그렇게 문짝을 뜯어내고 들어오셔서는 "그깟 대학이 뭔데 여기서 울고 있냐, 나는 너를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며 내 가슴을 치시던 엄마는,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그 어떤 종류의 콤플렉스도 없이 항상 자신 있게 사는 오늘의 나를 있게 한, 내 자존의 뿌리이며 토양이다.

  하긴 그건 나뿐만 아니라 내 동생도 마찬가지일 게다. 네 살 때 이미 '재생 불량성 빈혈'로 여섯 달을 넘길 수 없다던 동생이 지금까지 살아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건 오로지, 정말이지 오로지 엄마 때문이다.

  지난 이십여 년 동안 병원에서 가망이 없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던 것이 도대체 몇 번이었던가. 피를 토하고 배가 부풀어 남산만해지고 얼음처럼 창백해져 의식이 없는 자식 앞에서 엄마는 울지도 않으셨고 결코 포기하지도 않으셨다.

  어느 부모가 자식을 쉽게 포기하겠냐마는, 지난 이십여 년 간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본 나는 결코 물러설 줄 모르는 당신의 자식 사랑과 의지 앞에 그저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여자네 집안이 기운다고 친척의 결혼을 반대하는 집안 어른들을 향해 둘이 좋다는데 왜 반대하냐며, 그깟 돈 때문에 사람 가슴에 못을 박으면 당신들 천벌 받는다며, 가족회의를 박차고 일어나시던 엄마, 그 당차고 씩씩하고 자랑스런 엄마가...

  얼마 전 쓰러지셨다. 평생 감기 한번 들지도 않으시던 분이 뇌출혈로 어느 날 오후, 갑자기 쓰러지셨다.

  거품을 물고 쓰러져서 사지를 뒤트는 엄마를 응급실에서 보았을 때도, 출혈이 심해 생명이 위독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몇 시간에 걸친 긴박한 수술 끝에 온몸에 튜브를 꽂고 기도를 절개해 인공 호흡하는 혼수 상태의 엄마를 보았을 때도, 깨어난다 하더라도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 거라는 의사의 말을 들었을 때도, 식물인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 가족 모두가 울음바다가 되었을 때도... 난 울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악물었다. 수술 다음날 새벽 세시, 면회가 안 된다는 걸 뿌리치고 들어가, 엄마라고 불러도 고개 돌려 나를 쳐다보지 않는 엄마 옆에서 무릎 꿇고 맹세했다. 반드시 다시 살려내겠다고. 반드시.

  아직 손자도 안겨드리지 못했고, 아직 해외 여행 보내드린다는 약속도 못 지켰고, 아직 수염 깎는다는 약속도 지키지 못했고, 아직 사랑한다는 말 한번 제대로 못 했는데, 이건 너무 억울하다.

  보육원에서 데려다 손녀딸처럼 키우시던 다섯 살짜리 소란이가 자라서 결혼하게 되는 날, 두 발로 걸어서 식장에 들어가 자랑스럽게 부모석에 앉으시는 그 날까지, 그 때까지 눈물은 아껴두련다.

  엄마,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가 일으켜드릴게요.

  서점에서 아는 이에게 선물하려고 고르다가 제가 그냥 가져버린 기억이 있는 책입니다.
  지금도 선물하려고 책 뒷장에 적은 그 사람 이름이 선명한데 말입니다.

  용혜원의 시詩 <날마다 배우며 살게 하소서>를 적으며 글을 줄여야겠습니다.
  집에 오는 길에 빌린 DVD가 있는데, 너무 궁금해서요.
  그럼... 편안한 밤 되세요.

     초라해 보잘것없어 보이고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서도
     배울 것이 있다면 머뭇거리거나 지나치지 않고
     부끄럼없이 날마다 배우며 살게 하소서
     배움을 통해 확실히 깨닫게 하소서
     나의 삶의 위치를 바로잡게 하시고 늘 새롭게 하소서

     나의 삶이 늘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봄날에 돋아나는
     새순처럼 푸르고 싱싱하게 잘 자라게 하시고
     나의 삶이 늘 틀에 박혀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새로운 변화를 거듭하여 생명력 있는 믿음을 갖게 하소서

     배움을 통하여 깨닫게 하사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기회들을 놓쳐버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소서
     모르는 것들을 배워 알게 하시고 아는 것들을
     삶에 적용시키게 하소서
     나의 삶 속에서 날마다 배우며 살게 하소서


댓글 '3'

하얀사랑

2002.04.04 23:10:42

토미님... 외할아버지가 많이 아프시거든요...제 주위의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야할 시간이 얼마남지 않은것 같아 조금은 두렵습니다,,, 토욜에 외할아버지가 계시던 외갓댁에 가요.... 눈물만 나올것같아요...저와 동생 연연생이라 어렸을때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손에서 자랐었는데..그래서 더 두렵고 슬퍼져요...토미님 글 읽으니까 더 그렇다,,,토미님...근데요...<그대 없으므로 내 사랑 영원합니다.>이게 책 제목인가요?...^^ 저두 읽어보구 싶어서요....^^ 편한 밤 되세요...참, 아프지 마시구요..^^

토미

2002.04.04 23:25:53

하얀사랑님... 맞아요. 책제목입니다. 걱정이 많이 되시겠습니다. 제가 뭐라구 위로가 해 드릴 수가 없네요. 위로를 한다고 해서 위로가 되는 일이 아니니깐요. 그래도 외할아버지는 님의 눈을 보면 아실 겁니다. 분명히 그러실 겁니다... 힘내시고, 할아버지 앞에서는 어떻게 하셔야 하는 건지 아시죠?... 그럼.

우리지우

2002.04.06 10:41:48

토미님의 글을 읽으면 다시 한번 제 자신을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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