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어라...

조회 수 3356 2002.04.04 07:14:02
토미
  은희경의 <새의 선물>中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완전히 헤어진다는 것은
     함께 했던 지난 시간을 정지시킨다.
     추억을 그 상태로 온전히 보전하는 것이다.
     이후로는 다시 만날 일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시간에 의해
     지나간 시간의 기억이 변형될 염려도 없다.
     그러므로 완전한 헤어짐이야말로
     추억을 완성시켜준다.

  헤어져 보면 알게 됩니다. 그 모든 시간이 정지된 느낌을....
  문득문득 솟구쳐 오르는 슬픔과 아픔, 그 깊은 외로움을....
  그러나 더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말기를 바랍니다. 힘이 들지만 툴툴 털고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자기 성장, 자기 완성은 헤어짐의 경험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잘 헤어질 줄 아는 것, 만남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잠을 자려고 자리에 누웠지만... 너무 생각이 많은 탓인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지난 주 토요일에 구입한 책만 읽었습니다.
  책의 제목은 <브리짓 존스의 일기 -원제: Bridget Jones's Diary>입니다.
  아마 읽어보신 분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잠깐 책의 내용을 소개하자면...

  출판사에 다니는 브리짓은 아직 순수함과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30대 미혼 여성입니다. 독신 생활을 즐기면서도 한편으론 결혼에 대한 염원도 강한 편이지만, 이상적인 남성은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법, 그래서 가끔 상념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사회생활과 노는 일에서는 남들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호기심 많고 실수투성이에 엉뚱한 공상도 잘하는 데다가 울기도 잘하고 웃기도 잘하는 재미있는 성격 탓에 그녀의 주위에는 항상 사건이 끊이질 않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독신의 여자 친구들과 동성애자인 절친한 남자 친구, 자신만의 인생을 찾아 예순의 나이에 아빠와 별거에 들어간 잔소리쟁이 엄마, 그리고 그녀를 언제나 전전긍긍하게 만드는 남자들... 등 그녀의 주위에 있는 재미있는 캐릭터를 지닌 사람들도 그녀의 일상을 웃음으로 채워 가는데 한 몫을 합니다.

  그리고 이 책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보신 분도 있을 거 같습니다. 저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이 책에 대한 느낌을 적자면...

  우선... 유쾌합니다. 마치 코믹 시트콤을 보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아무런 부담이 없이 편안하게 읽히고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즐겁습니다. 왁자하게 웃음을 터뜨릴 만큼 웃기거나 눈물을 흘릴 만큼 감동스럽거나 책에서 손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재밌진 않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처음 읽는 순간의 사사로운 재미는 책의 끝까지 이어져, 읽는 내내 미소를 머금고 있게 합니다.
  여기에는 제목에 쓰인 것처럼 '일기'라고 하는 특별한 소설의 장치가 한 몫을 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단편적이고 형식화되기 쉬운 이야기는 브리짓의 행동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기라는 장치를 한껏 활용해 그녀가 갖는 감정의 굴곡들을 생기 있게 내뱉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읽기가 지루해지지 않고 오히려 끊임없이 집중하게 합니다. 출퇴근길이나 잠자리에서나 언제 어디서라도 편안하고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의 본문 일부를 소개하자면... 처음 부분입니다. 물론 이 부분만으로 이 책의 내용이 어떻다고는 설명할 수는 없지만 대충 이런 내용으로 쓰여져 있다는 것만 아시면 다 읽으신 거나 같다는 생각에 적어보았습니다.

  1월 3일 화요일

  몸무게 58.9kg(비만을 향해 치닫고 있다-왜지? 왜?). 알코올 6단위(양호!). 담배 23개비(대단히 양호함). 섭취 칼로리 2,472cal

  오전 9시- 아아, 지겹다. 회사에 나가야 한다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나마 좀 위안이 되는 건 다니엘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점. 하지만, 그것도 선뜻 마음이 내키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그 동안 살도 찌고 턱에 여드름까지 난 데다, 쿠션 위에 앉아 초콜릿을 먹으면서 TV의 크리스마스 특집프로나 보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기 때문이다.

  온갖 스트레스에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정서적, 금전적 어려움을 안겨 주는 크리스마스가, 개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찾아와서 떠들썩하게 사람들을 휘둘러대다가, 정작 간신히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젖어들기 시작할 무렵에 눈앞에서 채가는 건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일이고, 불공평하기까지 한 일이라고 나는 단정한다.

  정상적인 일상이 중단되는 동안, 눕고 싶은 대로 맘껏 누워, 먹고 싶은 대로 모두 입에 넣고, 아무 때나(심지어 오전 중에도) 손에 잡히는 술이란 술은 모두 마셔도 괜찮다는 그 흐뭇한 기분을 마악 즐기기 시작했는데, 이제 갑자기 그레이하운드 개처럼, 자신에게 엄격한 금욕적인 생활로 방향 전환을 해야 하다니, 우울해진다.

  밤 10시-흠, 나보다 약간 먼저 들어온 직장 선배라고 상사처럼 나를 대하는 퍼페추어. 그녀는 심술궂고 잘난 척하는 태도로 한없이 주절거렸다. 부자이긴 하지만 돼지같이 디룩디룩 살찐 남자 친구 휴고와 오십만 파운드(1파운드는 우리 돈으로 약2,000원 정도. 99년 3월 기준-역주)짜리 부동산을 공동 명의로 구입하려는 그녀의 계획에 대한 끔찍하게 지루한 얘기였다.

  '그래, 그래, 북향집이지만 무슨 수를 썼는지 일광 문제를 절묘하게 해결했더라구, 글쎄.' 나는 그녀의 이상한 줄무늬로 채워진, 엉덩이까지 오는 조끼와 빨간 스커트에서 비어져 나올 것 같은 커다랗고 둥근 양파 엉덩이를 처량하게 쳐다봤다. 그처럼 거만할 수 있는 것도 축복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퍼페추어는 르노 에스파세(프랑스제 자동차 이름-역주)만큼이나 몸집이 큰데도 별로 걱정되지 않는 모양이다. 내가 수많은 시간을 허비해 가면서 몸무게 걱정을 하는 동안, 그녀는 행복하게도 고양이 모양의 도자기 램프를 구하기 위해 풀함 거리를 누비고 다니고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퍼페추어는 진정한 행복을 모르는 여자 같다. 행복은 사랑, 돈, 권력이 아니라 달성 가능한 목표를 추구하는 데서 오는 것이라는 사실이 여론조사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체중 관리를 위해 다이어트를 하는 것이 그런 달성 가능한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크리스마스에서 신년 초에 이르기까지의 휴가 기간에 갖게 되는 특유의 염세적인 기분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떨이로 내놓은 초콜릿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과 병당 삼 파운드 육십구 페니밖에 하지 않는, 파키스탄인지 노르웨인지에서 들여왔다는 샴페인을 한 병 샀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트리에 매단 오색 전구 불빛 아래서 민스 파이 두 개, 마지막 남은 크리스마스 케이크 한 조각, 그리고 스틸튼 치즈와 함께, 쇼핑해 온 것들을 모두 먹어치우면서 텔레비전에 나오는 <이스트엔드 사람들>을 크리스마스 특집 프로라고 상상하며 보았다.

  지금은 그렇게 먹어댄 내 자신이 창피하고 혐오스럽다. 이제 지방이 몸밖으로 뚫고 나오려는 게 진짜로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상관없다. 화학약품 폐기물더미 속에서 미셸 파이퍼 뺨치게 아름답고 정화된 모습으로 불사조처럼 새로 태어나기 위해, 때로는 유독한 지방층의 수렁 속으로 가라앉아야 할 필요도 있는 거니까. 내일부터는 새로운 스파르타식 건강미용 식이요법의 나날이 시작될 것이다.

  으으음...... 그런데 다니엘 클리버는...... 어디지 모르게 악당 같은데, 왜 나는 이렇게 그를 좋아할까? 성공 가도를 달리는 수완가인 그는 머리도 무척 좋은 것 같은데...... 그는 오늘 모두에게 아주 재미있는 농담을 했다.

  글을 마치려는 순간에 생각난 글이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니? 오른쪽 길로 가야 할지, 왼쪽 길로 가야 할지...... 오른쪽 길로 가면 완전히 잘못 가는 건 아닐까? 또 왼쪽 길로 가면 내가 가려던 방향과 더 멀어지는 건 아닐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니? 우리가 살다보면 그런 상황들이 한두 번쯤은 꼭 온단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고, 알려주는 사람은 없고, 더군다나 내 목적지가 어딘지조차 잃어버렸을 때 말이야.

  너무 막막하지? 하지만 기억해야 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막막해도 그 길에 그냥 멈춰 서 있어선 안 되는 거야. 결정의 시간이 약간은 길어도 괜찮지만 분명한 건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앞으로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지. 그렇지 않다면 너는 아마 계속 그 자리에 있을 거야. 만약 그렇다면 네가 원하는 목적지는 애초에 없는 것이겠지. 기억하렴. 잘 몰라서 멈칫하는 시간이 약간은 길어져도 괜찮단다. 하지만 결정되면 앞으로 나가야 해. 아무 두려움 없이.

  좋은 글이죠. 이 글처럼 멈칫하는 시간이 길어질지라도 결정하면 앞으로 나가는 저와 님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럼... '마더 데레사' 수녀의 말을 적으며 줄일까 합니다.
  아침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사람들은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다.
     그래도 사랑하라.

     당신이 선한 일을 하면
     이기적인 동기에서 하는 거라고
     비난받을 것이다.
     그래도 좋은 일을 하라.

     당신이 성실하면 거짓된 친구들과
     참된 적을 만날 것이다.
     그래도 사랑하라.

     당신이 정직하고 솔직하면
     상처받을 것이다.
     그래도 정직하고 솔직하라.

     당신이 여러 해 동안 만든 것이
     하룻밤에 무너질지 모른다.
     그래도 만들라.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하면서도
     도와주면 공격할 지 모른다.
     그래도 도와줘라.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면
     당신은 발길로 차일 것이다.
     그래도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라.

댓글 '5'

바다보물

2002.04.04 07:56:23

좋은글 감사드려요 즐거운 하루되세요 앞으로도 계속 부탁드려요

미혜

2002.04.04 09:20:38

토미님께 오랫만에 인사 드리네요^^ 항상 깨달음을 주는 좋은글 감사드리구요~ 님도 좋은하루 맞이 하세요~

흠냐~

2002.04.04 09:31:17

안녕하세요 토미님~ 매일 토미님의 좋은글을 만날 수 있어서 참 좋네요..^^..브리짓존스의 일기 저는 극장에서 봤었는데..책은 읽어보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저한테는 무척 유쾌한영화였어여..ㅋㅋ..책도 읽어봐야 겠네여..토미님도 좋은하루 되세요..오늘 날씨가 무지 맑아여..그럼.

정아^^

2002.04.04 09:39:42

커피 한잔과 토미님이 올려주신글과 함께 시작하는 아침.....참 기분이 좋습니다^^ 은희경님의 글은 몇번 읽어본적이 있는데.... 읽어두 읽어두 넘 좋은거 같아요.... ㅎㅎ 그리구 브리짓존스의 읽기.... 책으로 꼬옥 읽고 싶네요... 토미님...감사^^ 좋은하루되세여~

운영2 현주

2002.04.04 11:19:48

저도 은희경의 작품을 좋아해요........^^ 새의 선물도 읽었었는데.... 어떤 내용이었드라~ 다시한번 꺼내봐야겠네요....... 토미님의 글을 읽으면.막~ 책이 읽고싶어지는거 있죠.......좋은 현상이죠?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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