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나서 행복하다...

조회 수 3064 2002.03.20 23:17:34
토미
     나의 삶에서
     너를 만남이 행복하다

     내 가슴에 새겨진
     너의 흔적들은
     이 세상에서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나의 삶의 길은
     언제나
     너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그리움으로 수놓는 길
     이 길은 내 마지막 숨을 몰아쉴 때도
     내가 사랑해야 할 길이다

     이 지상에서
     내가 만난 가장 행복한 길
     늘 가고 싶은 길은
     너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당신을 만나게 된 것이 기적입니다. 지금까지 살다간 800억 인류 가운데 만난 당신입니다. 당신을 만난 것이 행복입니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이 행복은 없었을 테니까요. 그래서 제 마음은 지금도 당신을 만나러 갑니다. 새로운 기적, 새로운 행복을 예감하면서....
  당신은 저의 기적이며 행복입니다.

  '지우'님과 '스타지우'를 알게 되어서 기쁜 제 마음을 용혜원님의 '너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는 시와 함께 표현해 보았습니다.

  요즘은 동생이 아침마다 자신의 차로 사무실까지 절 데려다 줍니다.
  형이 신경이 쓰이는 모양입니다. 참 좋은 동생입니다.

  동생이 데려다 주는 차車속에서 3주만에 다 읽은 책이 있습니다.
  제목은 '메디치 가家 이야기'이며, 원제는 'The House of Medici: Its Rise and Fall'입니다.
  저자著者는 '크리스토퍼 히버트Christopher Hibbert'로 영국 왕립 문학 협회의 특별 회원으로 있는 분입니다.

  이 책에 대해서 잠깐 소개하자면...

  근대의 목전, 15세기가 되자 '천재'라고 불리우는 이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소위 '르네상스'라 불리운 이 집단적 문예운동의 중심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등의 화가들과 단테, 마키아벨리 등의 거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위대한 정신들 뒤에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었으니, 바로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입니다.

  그러나 이 가문의 영향력이 단순히 '피렌체'라는 이탈리아의 하나의 도시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메디치 가家는 15세기부터 이후 3세기 동안,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근대 전반기 유럽의 역사를 이끈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메디치 가家 이야기>는 바로 이 매력적인 주인공의 탄생과 몰락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낸 책입니다.

  메디치 가의 사람들은 권력의 한시적인 속성을 알고 있었으며, 권력의 유지와 확장에 필요한 힘의 요소들을 본능적으로 다룰 줄 알았습니다. 그들은 군사력보다는 돈을 권력의 도구로 이용했으며 교황을 배출하고, 정략 결혼을 발표하고, 예술로써 권력에 화려한 색을 덧칠하며 300여 년간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메디치 가의 번영도 영원하지는 못했습니다. 프랑스의 샤를 8세에게 피렌체를 내준 피에트로 때문에 메디치 가家는 피렌체로부터 추방되었고 그들의 유산은 몰수당했습니다. 비록 18년 후 메디치 가家는 화려하게 복귀했지만, 르네상스가 서서히 그 빛을 잃어가면서 메디치 가家 역시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메디치 가家를 중심으로 벌어진 '피와 술과 눈물의 변주'만으로 이 책을 읽는 재미는 충분하지만 책이 담고 있는 것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지은이는 메디치 가문의 편력 뿐 아니라, 당대의 중요한 인물, 사회사 등도 함께 서술해, 이 책을 통해 르네상스 시대의 다양한 면면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이 책의 본문을 약간 소개하자면...

  본문 124∼127쪽에서

  … 그러나 사랑을 온몸에 받던 이 소년은 1461년 여섯 번째 생일 직전에 죽어서 할아버지에게 크나큰 슬픔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2년 후 지오반니 역시 살을 빼기 위한 식이 요법을 거부하다가 심장마비로 죽었다. 코지모는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하인들이 들것에 실어 메디치 궁의 커다란 방들을 지나가면 그는 한창 때 가솔이 50명이나 되었던 것을 기억하며 이렇게 중얼대곤 했다. "이제 이렇게 적은 가족이 살기엔 집이 너무 크군."

  그는 카레지 별장에서 침묵 속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아내가 왜 아무 말 없이 혼자 지내는지 궁금해하자 그는 '우리가 외출할 때면 당신은 준비하느라 보름을 보내지 않소? 내가 이제 이생에서 다음 생으로 옮기려니 생각할 게 얼마나 많겠소'하고 대답했다. 또 한번은 아내가 왜 그렇게 오래 눈을 감고 있는지 묻자 더 간결하고 체념한 투로 말했다. "눈에 익숙해지게 하려고 그러오."

  1464년 초여름 피렌체에 있던 스포르자의 칙사 니코데모트란 케디니가 그를 방문하러 왔다. 그는 과거에도 그를 만나러 왔다가 코지모와 아들 둘이 모두 병석에 누워 통풍으로 고생하면서 서로 성질을 부리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코지모는 성질을 부리기보다는 지쳐 있었고 거의 가망이 없어 보였다. 그는 통풍과 관절염말고도 방광염으로 자주 고열이 나 고통을 겪고 있었다. 코지모는 방문객에게 이렇게 말했다. "니코데모, 더 견딜 수가 없군. 나 자신도 약해지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네. 이제 갈 준비가 다 되었어." 그리고 두 달 후인 8월 1일 코지모는 죽었다. 그의 나이 일흔 여섯이었다.

  죽기 며칠 전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성장하고 산 로렌조 수도원장에게 고해성사를 했다. 그의 아들 피에로는 두 손자들에게 이렇게 전했다.

  미사에서 그분은 건장한 사람처럼 대답하셨지. 신앙을 고백하라고 하자 사도신경을 하나하나 외우고 고해를 반복하고 성찬을 받으셨단다. 그분은 이 모든 것을 온전히 헌신적인 마음으로 하시면서 당신이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셨지.

  자신이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코지모 역시 잘 알 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좀더 관대하고 참을성이 있었다면 그렇게 많은 권력과 재력을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코지모는 1434년 시뇨리아가 추방한 경쟁자들을 사면하거나 피렌체로 다시 불러들일 의향이 전혀 없었다. 또 자신의 재산을 위협하는 자들의 가족이나 사업을 파괴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친구들에게는 이득이 많고 명예로운 자리를 얻게 하고 메디치 가치 적들에게는 절대로 그런 자리에 오르지 못하도록 조처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피렌체인들이나 그의 업적에 마땅히 감사를 느끼던 동료 시민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사람들은 그의 죽음에 진심으로 애도하고 그의 관대함을 기리면서 그의 정치 능력과 수많은 업적들을 칭송했다. 친구였던 베스파시아노 다 비스티치는 그의 지식과 취향, 재능이 실로 놀랄 만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학자와 이야기할 때는 학문에 대해 토론했고, 신학자들과 있을 때면 그를 언제나 즐겁게 해주던 학문 분야인 종교에 대해 토론했다. 철학도 마찬가지였다. 점성술사들은 그가 자신들의 학문에 능통하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개인적인 경우에는 그 또한 점성술에 의지했기 때문이다. 음악가들도 그가 자주 즐기던 음악에 정통함을 알았다. 조각과 회화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 두 예술을 완전히 이해했고 유능한 장인들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끝으로 건축에 더없이 유능한 천문가였던 그의 의견이나 충고 없이는 그 어떤 중요한 공공 건물도 건축이 시작되거나 완성되지 못했다.

  그 몇 년 전에는 시뇨리아가 코지모를 카포 델라 레푸블리카(공화국의 지도자)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제 그를 파테르 파트리아이(Pater Patriae, 국부)라고 부르자는 법령이 통과되자, 한때 키케로에게 부여되었던 이 칭호는 법령에 따라 그의 묘소에 새겨졌다.

  메디치 가家 사람들은 세례당의 교황 요한 23세의 묘소 정도 되는 크기의 묘를 만들고 싶어했으나 코지모는 죽는 자리에서 어떤 허세나 과시 없이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 선친 역시 비슷한 요구를 했지만 그 요구는 무시되었었다. 지오반니 디 비치 데 메디치의 유해가 산 로렌조 교회로 운구될 때 그의 아들들과 스물 여덟 명의 다른 메디치 가 사람들과 외국 대사들, 피렌체 관리들의 긴 행렬이 그 뒤를 따랐으며 유해는 옛 성구실의 중앙에 매장되었다. 그 후 그의 묘소는 그가 적당하다고 여겼을 범위를 넘어 훨씬 더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코지모의 장례는 이보다 조용하기는 했으나 역시 위압적이었다. 수많은 촛불로 불을 밝힌 산 로렌조 교회당에서의 길고 엄숙한 예배 후에 그의 유해는 대리석 기념비 아래 매장되었다. 그 위로 메디치 가의 문장이 새겨진 원형의 사문석 반암이 제단상 밑에 놓였다. 하지만 산 로렌조 교회는 성 암브로제의 성당이고 제단 밑에 많은 성자의 유물들이 있어서 교회법상 성당 기념비 바로 밑에 시신을 매장할 수 없었다. 그의 시신은 납골당에 안치되었고 무덤을 사문석과 반암 기념비에 연결시키기 위해 8피트나 되는 거대한 석조 기둥이 그 사이에 건축되었다. 이 기둥에는 '피에로가 그 아버지를 기념하며 이를 세웠다'는 말이 씌어졌다.

  솔직히 본문만으로는 이 책의 일부도 소개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처음에 이 책을 고르게 만든 신문의 리뷰를 적어볼까 합니다.

  요즈음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활동을 일컫는 '기업메세나'라는 말이 흔하게 들린다. 이 메세나의 원조가 바로 이탈리아 피렌체를 지배했던 메디치 가문이다. 메디치 家가 전세계의 돈을 거머쥐고 권력을 쟁취한 3백년은 인류역사에 기록될 문화예술의 전성기인 르네상스였다. 메디치 家를 거론하지 않고는 르네상스를 설명할 수 없다.

  그들은 부를 바탕으로 한 권력으로 당시 피렌체의 입법, 사법, 행정, 종교를 장악했고 유럽의 지도를 움직였으며 교황까지 손아귀에 넣었다. 권력의 이면에는 엄청난 업적도 있었다. 그들의 사치와 취미가 인류문화의 황금시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메디치 家의 학문과 예술에 대한 지원은 대단했다. 그들의 지원으로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중심도시가 됐고 패션과 건축의 전당이 될 수 있었다.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갈릴레오 등도 메디치의 지원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는 인물들이었다.

  인문주의의 정점을 이룬 메디치 家의 흥망사의 담은 책 '메디치가 이야기(The House Medici-Its Rise and Fall)'가 국내에 출간됐다. '생각의 나무' 출판사에서 출간된 이 책은 영국출신의 유명한 역사저술가인 '크리스토퍼 히버트'가 쓴 것으로 메디치 家를 소개한 여러 책中 손꼽히는 명작이다.

  메디치 家가 역사의 주역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시기는 지오반니 데 메디치가 피렌체에서 모직공장을 운영하기 시작한 14세기 중반부터였다. 지오반니는 이재에 일찍 눈을 떠 은행업에 진출해 메디치 은행을 세웠다.

  메디치 은행은 당시 권력과 금력을 쥐고 있었던 교황청을 가장 큰 고객으로 만들면서 권력의 중심에 서기 시작한다. 교황의 권력에 밀착한 메디치 家는 점점 여러 가지 사업분야로 영역을 넓혔고 메디치 당黨이라는 정치 결사조직까지 만든다. 교황청의 재정적 비밀을 관리하면서 교황을 조종하기 시작한 메디치는 찬란한 권력행각을 시작한다.

  후손인 코지모 메디치는 플라톤 아카데미를 설립할 꿈을 꾸고 전세계의 귀중한 서적을 끌어모은다. 나중에 이 메디치 家의 도서관은 라틴계와 그리스 저자들의 1만권이 넘는 서책을 갖춘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원고들을 소장하게 된다. 이 도서관은 훗날 바티칸 도서관의 모델이 된다.

  메디치가는 장사의 귀재들이었다. 유물과 말 노예 등은 물론 노래를 잘하는 성가대 소년들과 기린 등 야생동물까지 매매했으며 향신료와 실크, 후추와 설탕 등 동방에서 온 물건들을 판매했고 유리공업, 모피산업, 염색산업 등에도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다.

  15세기 중반 지오반니가 가문을 이었을때 메디치 家는 교황청의 대사로 정치적 입지도 굳건히 한다. 이후 건축에도 열을 올려 각종 메디치 家의 저택들과 성당건축에 업적을 남긴다. 15세기 후반 메디치 가문은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후원하면서 르네상스에 불꽃을 당긴다.

  당시 가문의 수장이었던 로렌조는 이들 천재들과 거의 함께 생활했다. 이때 인류의 예술사는 크게 성장했다. 그림의 원근법, 움직이는 근육표현, 세밀한 묘사 등 미술사에 획을 긋는 작업들이 시작됐다.

  이밖에 메디치 가문에서 후원한 화가들의 이름만 나열해도 르네상스 미술인명사전이 된다. 필리포 리피, 마사치오, 우첼로, 보티첼리, 라파엘로, 도나텔로, 티치아노.... 메디치 가문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협박, 살인, 배반, 모략 등을 밥먹듯이 하면서 한편으로는 백성들의 인기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 노력의 방법론이 자기들의 치부를 예술로 감추는 것이었다고 후세의 사가들은 전한다. 가문을 유지하는 동안 메디치는 숱한 정치적 위기에 처하지만 그 순간들을 돈과 계략으로 모면하면서 불사신처럼 살아났다.

  이탈리아를 침공한 프랑스에 의해 피렌체에서 추방된 이후에도 결국 자기 가문에서 교황 레오 10세를 배출하면서 화려하게 복귀할 정도의 저력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메디치의 영광도 영원하지는 않았다.

  붕괴는 내부로부터 왔다. 17세기 중반 이후 메디치 家를 계승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사치와 만용, 쾌락에 멍들어갔다. 때맞춰 르네상스의 기운도 점점 시들해졌고 그들의 부(富)도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결국 1737년 가문의 7개 수장인 지안 가스토네가 죽으면서 메디치 가문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이 책은 윈저 家와 케네디 家, 록펠러 家를 합친 것과 같았던 한 가문의 스펙터클한 가족사를 다룬 책이자 르네상스 역사의 심층을 다룬 역사서이기도 하다.

  제가 본시 역사에 관한 서적을 좋아합니다.
  제 어릴 때 꿈이 考古學者고고학자였거든요.
  지금은 꿈으로만 끝났지만...

  책을 소개하면서 화가 이름을 적다보니... 화가 한젬마가 쓴 '그림 읽어주는 여자'中에서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내가 너에게 뭔가 해줄 것이 있었으면 좋겠어...."
  이 말을 남긴 채 그는 떠나갔다. 그 사람 앞에서 빈틈이 없는 척, 그리고 강한 척한 내 자신이
  한없이 미웠지만 이미 그가 떠난 뒤였다.

  최근에 와서 좋아하게 된 그림들의 특징은 뭔가 "덜 그린" 그림이다. 뭔가 덜 그렸다는 느낌.
  그래서 내가 완성하고 싶은 느낌이 들게 하는 그림.
  가능성으로 비어있는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마음이 어느 결에 스며들게 하는 그림.
  그랬구나, 덜 그린 듯한 저 그림이
  나를 붙잡듯, 조금은 부족한 듯한 그 모습이
  상대에겐 함께 하고픈 마음이 들게 하는구나.

  꽉 찬 그림, 꽉 찬 사람. 얼핏 보면 참 괜찮아 보입니다. 완성도도 높고 완벽해 보입니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한계입니다. 더 이상 붓을 댈 구석도, 타인의 마음이 함께 할 공간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깊은 매력은 여백餘白에서 나옵니다.
  바로 여기 '스타지우'에 채워지지 않고 남은 비어있는 부분에서 말입니다.

  얼마 전인가 개그맨 김형곤씨가 살을 빼 화제가 된 기사記事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기사를 보면서 요쉬카 피셔가 쓴 '나는 달린다'중에 나오는 구절이 생각이 난 적이 있습니다.

  뚱뚱한 사람 중에도 실제로 자신의 몸무게를 편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뚱뚱한 사람들 중 아주 드물게 볼 수 있는 이런 사람들은 진짜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현재 상태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자신의 뚱뚱한 생활 방식 속에서 합리적인 길을 찾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뚱뚱한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고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다. 또한 자신의 비만 상태로 인해 정서적으로 억눌리고 있으며 손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뚱뚱한 사람의 경쟁력은 몸매가 아니라 무게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잔바람에 나풀거리지 않는 무거움, 넉넉한 품성, 원만한 인간관계, 웬만하면 허허 웃어넘기는 낙천성에, 내면의 실력까지 갖춘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게으름입니다. 뚱뚱함의 원인이 게으름과 무절제에 있다면... 뼈를 깎는 결단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어제 밤보다는 날씨가 포근합니다. 그런데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습니다.
  내일 비가 오려고 하는지 별도 안 보입니다.
  그리고 제 허리의 통증도 심해집니다...
  좀 쉬어야겠습니다.
  그럼... 쉬세요.

    사랑을 잃은 어떤 사람은 슬플 때 별을 본다고 한다.
    그 어슴푸레 반짝이는 빛에 언젠가는 죽어서 그 별처럼 되리라고 다짐하며 별을 본다고 한다.
    그러다 진짜 별이 되면, 사랑했던 사람을 지켜봐야 하므로 다시 눈물을 흘러야 한다고 한다.
    그 눈물이 바로 별빛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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