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올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합니다...

조회 수 3177 2002.03.20 02:56:04
토미
  戀歌 20부를 다운받으려고 벌써 몇 시간째 기다리고 있는 지 모릅니다.
  아무래도 KBS서버에 문제가 있는 모양입니다.

  마냥 넋 놓고 기다릴 수 없기에... 이번 글에는 피천득님의 수필집 '인연'에 나오는 수필 한 편篇과 이해인님의 시 한 편篇을 적어볼까 합니다.
  피천득님의 수필은 학교 다닐 때 읽어본 기억이 있는 분이 많으실 거 같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생활

  나는 우선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 지금 돈으로 한 오 만원쯤 생기기도 하는 생활을 사랑한다. 그러면은 그 돈으로 청량리 위생병원에 낡은 몸을 입원시키고 싶다. 나는 깨끗한 침대에 누웠다가 하루에 한두 번씩 덥고 깨끗한 물로 목욕을 하고 싶다. 그리고 우리 딸에게 제 생일날 사주지 못한 비로드 바지를 사주고, 아내에게는 비하이브 털실 한 폰드 반을 사주고 싶다. 그리고 내 것으로 점잖고 산뜻한 넥타이를 몇 개 사고 싶다. 돈이 없어서 적조하여진 친구들을 우리 집에 청해오고 싶다. 아내는 신이 나서 도마질을 할 것이다. 나는 오 만원, 아니 십 만원쯤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 생기는 생활을 가장 사랑한다. 나는 나의 시간과 기운을 다 팔아 버리지 않고, 나의 마지막 십 분지 일이라도 남겨서 자유와 한가를 즐길 수 있는 생활을 하고 싶다.
  나는 잔디를 밟기 좋아한다. 젖은 시새(세사細沙: 가는 모래)를 밟기 좋아한다. 고무창 댄 구두를 신고 아스팔트 위를 걷기를 좋아한다. 아가의 머리칼을 만지기를 좋아한다. 새로 나온 나뭇잎을 만지기 좋아한다.  나는 보드랍고 고운 화롯불 재를 만지기 좋아한다. 나는 남의 아내의 수달피 목도리를 만져보기 좋아한다. 그리고 아내에게 좀 미안한 생각을 한다.
  나는 아름다운 얼굴을 좋아한다. 웃는 아름다운 얼굴을 더 좋아한다. 그러나 수수한 얼굴이 웃는 것도 좋아한다. 서영이 엄마가 자기 아이를 바라보고 웃는 얼굴도 좋아한다. 나 아는 여인들이 인사 대신으로 웃는 웃음을 나는 좋아한다.
  나는 아름다운 빛을 사랑한다. 골짜기마다 단풍이 찬란한 만폭동, 앞을 바라보며 걸음이 급하여지고 뒤를 돌아다보며 더 좋은 단풍을 두고 가는 것 같아서 어쩔 줄 모르고 서 있었다. 예전 우리 유치원 선생님이 주신 색종이 같은 빨간색, 보라, 자주, 초록 이런 황홀한 색깔을 나는 좋아한다. 나는 우리나라 가을 하늘을 사랑한다. 나는 진주빛 비둘기빛을 좋아한다. 나는 오래된 가구의 마호가니빛을 좋아한다. 늙어가는 학자의 희끗희끗한 머리칼을 좋아한다.
  나는 이른 아침 종달새소리를 좋아하며, 꾀꼬리소리를 반가워하며, 봄 시냇물 흐르는 소리를 즐긴다.
  갈대에 부는 바람소리를 좋아하며, 바다의 파도소리를 들으면 아직도 가슴이 뛴다. 나는 골목을 지나갈 때에 발을 멈추고 한참이나 서 있게 하는 피아노 소리를 좋아한다.
  나는 젊은 웃음소리를 좋아한다. 다른 사람 없는 방안에서 내 귀에다 귓속말을 하는 서영이 말소리를 좋아한다. 나는 비 오시는 날 저녁 때 뒷골목 선술집에서 풍기는 불고기 냄새를 좋아한다. 새로운 양서 냄새, 털옷 냄새를 좋아한다. 커피 끊이는 냄새, 라일락 짙은 냄새, 국화, 수선화, 소나무의 향기를 좋아한다. 봄 흙 냄새를 좋아한다.
  나는 사과를 좋아하고 호도와 잣과 꿀을 좋아하고, 친구와 향기로운 차를 마시기를 좋아한다. 군밤을 외투 호주머니에 다 넣고 길을 걸으면서 먹기를 좋아하고, 찰스 강변을 걸으면서 핥던 콘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
  나는 아홉 평 건물에 땅이 오십 평이나 되는 나의 집을 좋아한다. 재목은 쓰지 못하고 흙으로 진 집이지만 내 집이니까 좋아한다. 화초를 심을 뜰이 있고 집 내놓으라는 말을 아니 들을 터이니 좋다. 내 책들은 언제나 제자리에 있을 수 있고 앞으로 오랫동안 이 집에서 살면 집을 몰라서 놀러 오지 못할 친구는 없을 것이다.
  나는 삼일절이나 광복절 아침에는 실크 해트(hat)를 쓰고 모닝을 입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그것은 될 수 없는 일이다. 여름이면 베 고의적삼을 입고 농립을 쓰고 짚신을 신고 산길을 가기 좋아한다.
  나는 신발을 좋아한다. 태사진, 이름 쓴 까만 운동화, 깨끗하게 씻어 논 파란 고무신, 흙이 약간 묻은 탄탄히 삼은 짚신, 나의 생활을 구성하는 모든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한다. 고운 얼굴을 욕망 없이 바라다보며, 남의 공적을 부러움 없이 찬양하는 것을 좋아한다. 여러 사람을 좋아하며 아무도 미워하지 아니 하며, 몇몇 사람을 끔찍이 사랑하며 살고 싶다. 그리고 나는 점잖게 늙어가고 싶다. 내가 늙고 서영이가 크면 눈 내리는 서울 거리를 같이 걷고 싶다.

  이해인님의 시의 제목은 '어린 왕자를 생각하며 - 생텍쥐페리에게'입니다.

     날마다
     해질녘이면
     "나는 외롭다"고 칭얼대는 어린 왕자의 쓸쓸한 목소리가 들립니다.

     별이 뜨면
     가장 아름다운 어린 왕자 애기를
     우리에게 안겨놓고 어느 날 마흔 네 살의 나이에 하늘나라로 사라진
     별 아저씨, 당신을 기억합니다.
     <어린 왕자>에서 이야기하는
     '마음으로 보는 법'을 '길들이는 법'을
     날마다 새롭게 깨우치며
     우리는 이제 모든 만남에서
     설레임의 별을 안고 삽니다.

     올해는 아저씨의 '탄생 94주년'
     비행기 타고 간 하늘길에서의 '실종 50주년'
     각종 기념행사와 추모미사가
     프랑스에서 열린다는데
     신문은 당신을 '사라진 어린 왕자'로
     대서특필하였습니다.

     <어린 왕자>를 읽은 모든 사람들은
     의좋은 형제 자매가 되어
     만난 일도 없는 당신을 따뜻한 마음으로 그리워합니다.

     '수녀님. 어린 왕자의 촌수로 따지면
     우리는 친구입니다.'
     한국어 번역판 머리글을 눈물나도록 아름답게 쓴 법정스님이
     어느 날 제게 써 보냈던 이 말은
     항상 반짝이는 별로
     제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잠시 다니러 온 지구 여행을 마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멋있게 작별할 줄 알았던
     어린 왕자의 그 순결한 영혼과
     책임성있는 결단력을 사랑합니다.

     사라져도 슬프지 않은
     별이 되기 위해서도
     우리는 오늘 이 순간을 놓치지 말고
     사랑으로 길들이며
     사랑 속에 살아야겠지요?

     우리에게 <어린 왕자>를 낳아 주고
     홀연히 하늘 저쪽으로 사자져 갔던
     별 아저씨
     눈이 푸른 아저씨. 고맙습니다.
     이제 보니 당신은 죽은 게 아니군요.
     어린 왕자를 닮고 싶은
     우리의 영혼 속에
     당신은 별 아저씨로 새롭게 태어나
     속삭이는군요.
     "아주 간단한 거야.
     잘 보려면 마음으로 보아야 해."

  무언가를 볼 수 있고, 만져볼 수 있고,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크나큰 축복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특히 '프리보드'안에 글을 올릴 때 말입니다.
  글을 읽을 수도 없고, 쓸 수도 없다면, 그리고 볼 수도 없다면 전 여기를 모르고 살아가겠죠...
  제가 매일 와서 확인하고, '오늘 이 분 또 왔구나... 어, 어제는 이 분이 안 왔는데, 오늘은 오시려나...'등등...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고, 안부를 묻게 만드는 이 곳... 참 편안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마더 데레사의 아름다운 선물'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본문 90page에 나오는 글인데...

  우리의 영혼은 어디서나 하느님을 감지할 수 있는 맑고 투명한 수정처럼 되어야 할 것입니다. 늘 투명해야 할 이 수정이 때로는 오물과 먼지로 뒤덮여 있기도 할 테지요. 더러움을 없애고, 깨끗한 마음을 지니기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양심성찰을 해야 합니다.

  전 여기에 오시는 분들이 맑고 투명한 수정처럼... 맑고 투명한 것만 보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그리고 자신이 본 맑고 투명한 것들을 글로 여기에 옮겼으면 합니다.
  때로는 세상의 더러운 것에서 피하고 싶을 때... 여기를 찾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여기에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治癒받고, 여기서 지식의 허기를 채우고, 여기서 교양의 깊이와 넓이를 깊게 하고 넓혔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봅니다.
  물론 저도 거기에 한 몫을 하였으면 좋겠구요.

  아직도 서버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모양입니다.
  이러다 밤새는 거나 아닌지...
  서버가 정상이 될 때까지 이제 30페이지 정도 남은... -이 책 읽기 시작한 지 이제 3주가 넘어갑니다. 너무 어렵고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어서요- ... 책을 읽어야겠습니다.
  다음에 '프리보드'를 방문할 때는 이 책에 대해서 써 볼까 합니다.

  아침에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제 옆에 앉는 여자후배의 웃는 얼굴을 보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보며 이만 줄일까 합니다.
  그럼... 웃는 하루 되세요.


댓글 '1'

운영2 현주

2002.03.20 03:10:19

토미님의 좋은 글과 마주할수 있는 이 늦은 한가로운 밤이 있어 또한 행복합니다..... ^^ 토미님도 편안한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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