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를 쓰신 법정스님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가장 혼란스러울 때, 법정의 무소유를 처음 만났습니다.
  그 뒤로 마음이 탁해질 적마다 펼쳐보기를 꽤 많이 반복했습니다.
  저와는 종교가 다르면서도 전혀 거부감 없이 느껴지는 맑은 영혼과의 대화, 그것은 이 책 속에 숨겨져 있는 깊은 사색과 버리고 비우기의 향기로움 때문이었습니다.

  바흐의 음악과 녹차 한잔이면 충분히 만족할 수 있겠다는 마음의 충만함이 책의 갈피 갈피마다에 숨쉬고 있어 무소유를 읽는 내내 저는 행복했습니다. 특히 38쪽의 '설해목雪害木'과 66쪽의 '잊을 수 없는 사람'은 잔잔한 감동으로 내 가슴속에 오래오래 남아있는 줄거리이기도 했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위엄도 권위도 아닌 오로지 자비라는 것과, 바닷가의 조약돌을 예쁘게 다듬는 것은 부드러운 물결이고 아름드리 나무를 꺾는 것은 사뿐히 내려앉는 하얀 눈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깊은 사유 끝에 걸러진 맑고 향기로운 깨달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에 대한 근원적 따사로움이 왜 필요한지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 내용이었습니다.

  잊을 수 없는 사람인 수연스님 또한 자비를 몸소 실천해 보인 부드러운 물결과 같은 분이었습니다. 추운 겨울날 80리 길을 걸어 친구에게 약을 지어다 먹이고 버스의 창을 고치고 신발을 깨끗이 닦아 놓았던 그는 말없는 보살이었고 부처였습니다. 사람이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지식이나 말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맑은 시선과 조용한 미소, 따뜻한 손과 말없는 행동에서 혼과 혼이 마주치는 것이라는 사실을 법정은 수연스님을 통해 일러 주고 있습니다.

  짧은 세상이었지만 사랑을 실천하고 떠난 수연스님은 어떻게 사는 것이 진짜 참다운 삶인가를 분명히 새기고 갔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법정이 실생활에서 만난 사람과 사람사이의 굵직한 인연들은 이처럼 더할 나위 없이 진하고 향기로웠습니다. 다른 사람의 가슴에 좋은 감정으로 오래도록 남아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라고 믿습니다.

  무소유의 개념도 이와 똑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이고 나타나는 물질은 아니지만 세상을 버리고 떠난 뒤에 그 사람의 정신이 타인이나 자식들에 의해 고스란히 기억되는 것, 바로 그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돌아가신 부모를 재산의 많고 적음에 따라 평가하고 고마워하는 후손은 없을 것이라 봅니다. 조건 없는 사랑을 얼마만큼 받고 또 받았는지 그 엄청난 희생과 자비의 마음 앞에 눈물짓고 그리워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물은 거름과 같아서 쌓아두면 썩은 냄새를 풍기지만 뿌려주면 많은 것을 자라나게 한다고 했습니다. 상속은 자식들의 재능과 에너지를 망치게 한다고도 했습니다.

  돈을 많이 모은 어느 요정 마담이 법정을 재산 관리인으로 하여 모든 소유를 사회에 환원했다는 미담도 들었습니다. 간혹 절에서까지 소유권 다툼에 종종 시끄러운 현실에서 법정스님 같은 무소유 영혼의 정직함만을 믿고 모두 맡긴 것이라 봅니다. 법정스님 또한, 인세마저도 사회 곳곳에 기탁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정작 본인은 산 속의 조그만 오두막집에서 전기도 없이 늘 불편하게 생활하면서 말입니다. 실천하는 양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없는 가운데서도 마음을 나누는 일은 더욱 가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생들은 누구나 살아 존재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신께 감사해야 한다는 사실 또한, 진지하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어떤 집착의 올무에 매여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좋은 것은 더 좋은 것을 추구하게 만들뿐입니다.

  법정은 무소유의 의미를 비단 물질적인 것에만 두지 않았습니다. 집착과 이기심, 욕심, 또는 정신적 타락 등에 더 큰 비중을 두었습니다.

  보이는 것에 대한 집착으로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어두운 영혼에 대한 무소유의 소중함을 조용히 깨우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한줄기 맑은 샘물과도 같은 영혼의 소유자 법정. 이 분의 심상을 통해 전해오는 정신적 기쁨은 그야말로 넓고 깊었습니다.

  맑고 향기로운 공기를 마음껏 마실 수 있었습니다. 법정도 언젠가 한줄기 바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법정이 이 수필 속에 남긴 청아하고 맑은 영혼의 모습은 영원히 제 곁에 남아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법정의 무소유가 안겨주고 있는 사유의 깊이는 욕심으로 마음 답답한 날, 맑고 깨끗한 생수처럼 내 영혼을 촉촉하게 적셔줄 게 분명합니다. 그만큼 생각을 많이 하게 하고 저 자신을 돌아보게 한 책이었습니다. 법정이 좋아하는 어린왕자만큼이나 아름다운 삶의 의미가 되어 내 가슴속깊이 오래오래 살아 숨쉬리라... 믿습니다.

  노트에 적어놓은 글을 약간 손질해서 적어보았습니다.
  혹시 '설해목雪害木'을 읽지 않으신 스타지우님들을 위해서 수필의 본문도 적어보겠습니다.

  해가 저문 어느 날, 오막살이 토굴에 사는 노승 앞에 더벅머리 학생이 하나 찾아왔다. 아버지가 써준 편지를 꺼내면서 그는 사뭇 불안한 표정이었다.

  사연인즉, 이 망나니를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더 이상 손을 댈 수 없으니, 스님이 알아서 사람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노승과 그의 아버지는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편지를 보고 난 노승은 아무런 말도 없이 몸소 후원에 나가 늦은 저녁을 지어왔다. 저녁을 먹인 뒤 발을 씻으라고 대야에 가득 더운물을 떠다주는 것이었다. 이때 더벅머리의 눈에서는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아까부터 훈계가 있으리라 은근히 기다려지기까지 했지만 스님은 한마디 말도 없이 시중만을 들어주는 데에 크게 감동한 것이었다. 훈계라면 진저리가 났을 것이다. 그에게는 백 마디 천 마디 말보다는 다사로운 손길이 그리웠던 것이다.

  이제는 가버리고 안 계신 한 노사老師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내게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노사의 상象이다.

  산에서 살아보면 누구나 다 아는 말이지만, 겨울철이면 나무들이 많이 꺽이고 만다. 모진 비바람에도 끄떡 않던 아름드리 나무들이, 꿋꿋하게 고집스럽기만 하던 그 소나무들이 눈이 내려 덮이면 꺽이게 된다. 가지 끝에 사뿐사뿐 내려 쌓이는 그 하얀 눈에 꺽이고 마는 것이다. 깊은 밤, 이 골짝 저 골짝에서 나무들이 꺽이는 메아리가 울려올 때, 우리들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정정한 나무들이 부드러운 것에 넘어지는 그 의미 때문일까, 산은 한겨울이 지나면 앓고 난 얼굴처럼 수척하다.

  사아밧티이의 온 시민들은 공포에 떨게 하던 살인귀 앙굴리마알라의 귀의시킨 것은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신통력이 아니었다. 위엄도 권위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로지 자비였다. 아무리 흉악무도한 살인귀라 할지라도 차별없는 훈훈한 사랑 앞에서는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바닷가의 조약돌을 그토록 둥글고 예쁘게 만든 것은 무쇠로 된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인 것을...

  이런 어른들이 많았으면 합니다.
  그러면 언론매체에서 나오는 흉악한 소식들에 더 이상 놀라는 일이 없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늦게 들어와서 연가戀歌를 못 보니 굉장히 궁금하네요.
  아직도 멍한 12부 마지막 장면만 연상이 되니...

  '삶의 향기란, 맑고 조촐하게 사는 그 인품에서 저절로 풍겨 나오는 기운이라고 생각된다. 향기 없는 꽃이 아름다운 꽃일 수 없듯이 향기 없는 삶 또한 온전한 삶일 수 없다.'는 법정스님의 말처럼 향기 나는 삶을 사는 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럼... 따사로운 밤 되시길


댓글 '7'

세실

2002.02.26 01:28:03

토미님 그럼 13부 후기는 못올리나요? 설해목 잘 읽었습니다. 애들에게 책망안하고 키울려는데 잘 안되네요.

하얀사랑

2002.02.26 01:36:00

"삶의 향기란, 맑고 조촐하게 사는 그 인품에서 저절로 풍겨나오는기운이라,,,,,향기없는 꽃이 아름다운 꽃일 수 없듯이 향기없는 삶 또한 온전한 삶일 수 없다,,," 하얀사랑,, 이 밤 토미님 글 일고 도조히 그냥 지나칠수 없어 요렇게 댓글 달아요,,,,^^ 왠지 모르게 토미님은 아름다운 삶의 향기가 날 것 같네요...*^^* 토미님의 글에 하얀사랑도 조촐하게나마 따뜻한 입김 불어드립니다... 편한 밤 되세요

이희정

2002.02.26 03:22:11

이곳에서 만나는 법정스님... 참 좋네요....

토미

2002.02.26 04:54:57

세실님... 죄송합니다... 되도록 후기를 올리려고 했는데, 제가 다운받은 것이 소리가 나지 않네요... 화면만 봐서는 느낌을 적을 수 없어 부득이 늦어질 것 같네요... 졸린 것 참으면서 봤는데... 저러다가 지우님 쓰러지지 하는 느낌밖에는 오지 않네요... 그럼. 쉬세요.

토미

2002.02.26 05:00:53

하얀사랑님... 님의 답글에 매번 감사를 느낍니다.. 전 소리나지 않는 戀歌 13회를 보느라 밤을 새웠습니다... 덕분에 지금 좀 몽롱하네요... 내일 이제 아니군요, 오늘 낮에 사무실 여자 후배 꾀여서 회의실 문 잠그고 연가 13회를 봐야겠어요...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토미

2002.02.26 05:02:54

이희정님... 좋으시다니 다행입니다. 그럼 자주 뵙길 바라겠습니다... 님의 하루가 향기 나기를.

동이

2002.02.26 12:39:55

토미님 글에 법정스님의 글이 많더군요. 글 자체가 단아해서 지금 읽고 있는 책 다 읽으면 한번 읽어 볼까해요. 덕분에 좋은 글들을 읽게 해주시고 좋은 책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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