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조회 수 3018 2002.10.31 19:20:30
온유



<그 여자네 집>_김용택 님_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라보면 정다웠던 집
어디 갔다가 늦게 집에 가는 밤이면
불빛이, 따뜻한 불빛이 검은 산속에 깜박깜박 살아 있는 집
그 불빛 아래 앉아 수를 놓으며 앉아 있을
그 여자의 까만 머릿결과 어깨를 생각만 해도
손길이 따뜻해져오는 집

살구꽃이 피는집
봄이면 살구꽃이 하얗게 피었다가
꽃잎이 하얗게 담 너머까지 날리는 집
살구꽃 떨어지는 살구나무 아래로
물을 길어오는 그 여자 물동이 속에
꽃잎이 떨어지면 꽃잎이 일으킨 물결처럼 가닿고 싶은 집

샛노란 은행잎이 지고 나면
그 여자
아버지와 그 여자
큰오빠가
지붕에 올라가
하루 종일 노랗게 지붕을 이는 집
노란 초가집

어쩌다가 열린 대문 사이로 그 여자네 집 마당이 보이고
그 여자가 마당을 왔다갔다하며
무슨 일이 있는지 무슨 말인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 소리와
옷자락이 대문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면
그 마당에 들어가서 나도 그 일에 참견하고 싶었던 집

마당에 햇살이 노란 집
저녁 연기가 곧게 올라가는 집
뒤안에 감이 붉게 익는 집
참새떼가 지저귀는 집
보리타작, 콩타작 도리깨가 지붕 위로 보이는 집
눈 오는 집
아침 눈이 하얗게 처마끝을 지나
마당에 내리고
그 여자가 몸을 웅숭그리고
아직 쓸지 않은 마당을 지나
뒤안으로 김치를 내러 가다가 "하따, 눈이 참말로 이쁘게도 온다이이" 하며
눈이 가득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싱그러운 이마와 검은 속눈썹에 걸린 눈을 털며
김칫독을 열 때
하얀 눈송이들이 어두운 김칫독 안으로
하얗게 내리는 집
김칫독에 엎드린 그 여자의 등에
하얀 눈송이들이 하얗게 하얗게 내리는 집
내가 함박눈이 되어 내리고 싶은 집
밤을 새워, 몇밤을 새워 눈이 내리고
아무도 오가는 이 없는 늦은 밤
그 여자의 방에서만 따뜻한 불빛이 새어나오면
발자국을 숨기며 그 여자네 집 마당을 지나 그 여자의 방 앞
뜰방에 서서 그 여자의 눈 맞은 신을 보며
머리에, 어깨에 쌓인 눈을 털고
가만가만 내리는 눈송이들도 들리지 않은 목소리로
가만 가만히 그 여자를 부르고 싶은 집



네 집

어느 날인가
그 어느 날인가 못밥을 머리에 이고 가다가 나와 딱 마주쳤을 때
"어머나" 깜짝 놀라며 뚝 멈추어 서서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며 반가움을 하나도 감추지 않고
환하게, 들판에 고봉으로 담아놓은 쌀밥같이,
화안하게 햐얀 이를 다 드러내며 웃던 그
여자 함박꽃 같던 그
여자

그 여자가 꽃 같은 열아홉까지 살던 집
우리 동네 바로 윗동네 가운데 고샅 첫집
내가 밖에서 집으로 갈 때
차에서 내리면 제일 먼저 눈길이 가는 집
그 집 앞을 다 지나도록 그 여자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지는 그 여자네 집
지금은 아,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집
내 마음속에 지어진 집
눈감으면 살구꽃이 바람에 하얗게 날리는 집
눈 내리고, 아, 눈이, 살구나무 실가지 사이로
목화송이 같은 눈이 사흘이나
내리던 집
그 여자네 집
언제나 그 어느 때나 내 마음이 먼저

있던 집


여자네

생각하면, 생각하면 생. 각. 을. 하. 면......


  세월은 흘러가라고 있나봐요
  무심히 지나치던 달력을 보니
  한해도 두달 정도 남았네요

  11월이 지나면 반가운 기다림이
  있어 시월의 마지막 밤이 쓸쓸하지 않네요

그날을 기다리며..우리 가족들 화이팅 하자구요~~





댓글 '6'

꿈꾸는요셉

2002.10.31 19:30:50

온유님.. 제가 젤 먼저 꼬리 잡았네요. 많은 달 중에 왜 10월의 마지막 날 과밤이 이리도 많은 이의 마음에 큰 점을 찍을까요... 11월의 차가운 바람도 사랑으로 녹일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이 되기를 기도합시다.. 여진의 그리움만 쌓이네.... 시원한 가창력으로 뽑아줄 사람?... 아름다운 글과 예쁜 풍선들.... 가슴 한아름 안고 갑니다.

들국화

2002.10.31 21:04:13

온유님, 오늘 전화 통화 즐거웠습니다.....날씨가 많이 춥습니다....건강조심 하세요....잠깐 들어와, 댓글 답니다.....시와 노래가 참 좋네요....오늘이 10월의 마지막 날이지요...10월이 되면 언제나 생각 나는 노래"이용"의 "잊혀진 계절".............여고 시절 참 좋아한 노래인데......

달맞이꽃

2002.10.31 21:14:15

우우우~~~이렇게 2002년 10월은 저무는구나 .. 무수한 시들이 시월을 노래하며 ,아름다운 글들이 시인에 손끝을 시리게 하고 시월은 유난히 아름답게 다가오는건 ,무엇인지 후후후~~~온유야 ,온니 센치해진다 ㅋㅋㅋㅋ이용에 노래구나 후후후,잘듣고 간다 ,잠시 온유땜시 분위기 함 잡았네 ㅋㅋㅋ편한밤 ^^**

운영자 현주

2002.11.01 08:38:35

날라다니는게 민들레 홀씨인가요 하얀 풍선인가요...ㅋㅋ 아님 딴거? 모징? 띨띨한 현주~ 아잉~ 요즘은 시간이 너무 빠르단 생각이 들어요...벌써 11월이라니.. 이제 한해도 다 간 느낌... 쓸쓸한 요즘입니다............

sunny지우

2002.11.01 09:12:48

온유를 분위기 우먼으로 임명해야겠구나...토토로와 감성이 통했나보구나, 11월을 행복하게...

바다보물

2002.11.01 11:42:09

온유야 톰아짐이랑 필이?좋은 글이네 온유도 잘 지내라!~~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sort
494 &lt;101번째 프로포즈&gt; 지우씨 사진 몇장 추가입니다~^^ [4] 지우사모 2004-11-09 3008
493 기대...설레임...기다림...^^ [6] 코스 2004-11-15 3008
492 지우히메 영상집 열도유혹 [기사모음] [2] 2004-12-08 3008
491 [Large Photo+Interview] Cosmopolitan Feb [7] ^-^ 2004-12-19 3008
490 2막 커튼을 들어올릴 때... [2] 토미 2004-12-31 3008
489 데스크 전망대]임규진/슬픈 ‘겨울연가’ [1] 성희 2005-01-18 3008
488 Christian Dior CF 사진 [10] 지우공쥬☆ 2005-01-19 3008
487 한일우정의 해.한일공동방문의 해 포스터 [1] 2005-02-16 3008
486 비스트로에 천사강림 [12] 도하 2005-02-22 3008
485 아직도 춥습니다. 눈도 온데요~ [5] 도하 2005-03-05 3008
484 후지TV 천국의 계단 최종회 게시판 글모음[4/3~4/4] [2] 앤셜리 2005-04-05 3008
483 안녕하세요.일본에서왔어요. [6] kamiri 2005-04-08 3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