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가 14부까지의 민형, 상혁, 유진, 채린을 보고 있으면서... 문득 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혁은 유진을 사랑합니다... 민형도 유진을 사랑합니다... 유진은 민형을 사랑합니다... 채린도 민형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고 챙기는 사람은 없다는 생각... 말입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돌보는 것은 분명히 자기 중심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에 대해서 그렇게 하지 못하면 결코 타인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성경에 이르기를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했지,
  "너 자신보다" 또는 "너 자신은 말고" 이웃만 사랑하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데 어디에서 타인에 대한 사랑을 이끌어낼 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타인을 숭배할 수는 있습니다.
  숭배는 남을 위대하게 하고 자신은 왜소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타인을 열망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열망은 내면의 불완전성을 인식하는 데서 생기는 거니까요.
  그러나 그들은 타인을 사랑하지는 못합니다.
  사랑은 삶의 긍정이며 우리들 모두의 내부에서 성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키우지 못한다면 줄 수도 없습니다.

  연가 14부에서 유진이 공항에서 민형을 만나서 다시 호텔로 돌아오고... 준상의 기억을 잊어버린 민형은 모두를 위해서 뉴욕으로 돌아가고자 잠든 유진을 두고 호텔에서 나오고... 유진은 두 번 다시는 민형 아니 준상을 놓칠 수 없어 쫓아 나오다... 길 건너편에 있는 민형을 보고 무작정 길을 건넙니다... 유진의 위험을 본 민형은 또 한번의 사고를 당하고 응급실로 실려갑니다.
  여기까지 보면서 전 이 시를 떠올렸습니다.

     평생을 사랑으로 같이 하고픈
     두 사람이 있었다
     두 사람은 하늘의 별을 보며 같이 살 수 있게 되기를
     하느님에게 기도 드렸다
     하지만 그 시각에 누군가는 또 다른 소원을 기도했다
     사랑의 기도는 이루어졌지만
     죽음을 부르는 사악한 소원 또한 이루어졌다

     이제 나는 눈물과 웃음으로
     내 소망을 기원한다
     다음 생에서는 두 연인이 다시 만나기를

  유진이 민형의 호텔방 앞에까지 갔다가... 그대로 돌아서서 엘리베이터 안에 붙은 거울을 보고 말하는 장면이 있죠.
     "이제 와서 너... 그 사람 그렇게... 잡고 싶은 거니?... 바보 같이..."

  이 장면 보면서 예전에 민형이 병원에서 유진이를 상혁의 병실로 보낼 때 쓴 '나는 바보...'라는 시가 생각났습니다.

     사랑하면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고
     보고 싶어도 보고 싶다고 말할 수 없는 고통이란
     참으로 이겨내기 힘든 삶의 무게다

     나중에 어떻게 되더라도
     지금 내 감정에 충실해서 사랑을 고백한다면 안 될 것도 없지
     이리 재고 저리 재보고 이내 포기하는 내 비겁을
     오늘도 난 나무란다.

     내가 가장 맘놓고 기댈 수 있는 사람
     그만큼 좋은 사람.
     그런 사람을 떠나보내면
     보기 좋게 무너질 걸 알면서도 내 이기심에
     그 사람을 붙잡고 싶지 않는 알량한 내 모습.

     차라리 그 사람에게 나보다 더 좋은 사람 나타나
     나를 잊고 행복한 사랑을 한다면
     그나마 내 마음도 한결 나아질텐데...

     그 사람은 찾을 생각조차 않고
     나 역시 은근히 그 사람이 끝까지
     내 곁에 머물러 주기만을 바라고,

     그러면서 겉으로는 서로에게 좋은 사람 만나라고
     맘에도 없는 말 꺼내기만 하고,
     정작 사랑한다는 그 말은 끝끝내 과거로 묻어두고...

     그 사람이 있어 내가 사는 현실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내가 기대면 그 사람 힘들까봐
     언제나 강한 척 자존심만 내세우고,

     이러다 정말 이루고 못하고 떠나보내면 평생을 후회하며 산다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진실로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믿기에
     그러기에 더더욱 다가서면 안된다는 걸

     그리 어리석음을 철썩 같이 믿고 있는 나는 바보

  떠나겠다고 마음먹고 모든 것을 정리하고... 사무실에서 김차장에게 '그동안 고마웠다'고 말하고 나오면서 문옆에 있는 퍼즐판을 보며 민형이 이렇게 말하죠.
     "난.... 이거 왜 했는지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정말 한 조각 한 조각 기억하고 싶은 게
      많아서 그랬나 봐요. 바보같이...."

  이렇게 말하는 민형의 어감語感를 들으면서... 윤재철님의 '추억하지 말기'라는 시를 떠올렸습니다.

     뒤돌아보지 말기
     다시 생각하지 말기
     흘러간 것은 흘러간 것대로
     그냥 두기
     아름답게 보기

     아니 추억하기
     철저하게 추억하기
     처음 잡았던 손의 따스함부터
     그때 그 눈동자
     아득한 절망까지
     두 눈 뜨고 기억하기
     지치도록 기억하기

     그리하여
     추억하지 말기
     다시 생각하지 말기
     흘러간 것은 흘러간 것대로
     그냥 두기
     흘러가는 것도 흘러가는 것대로
     그냥 보기

  공항에서 민형과 유진이 만나는 장면이 있죠.
  유진이 민형을 보며 말하죠.
     "미안해.... 준상아.... 못 알아봐서 미안해.... 정말 미안해...."

  유진의 말을 듣고 있는 민형을 보면서 나희덕님의 시중에 한 구절을 떠올렸습니다.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그리고 피천득님의 '인연'중에 나오는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그리워하는 데도 한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유진과 민형이 호텔에서 서로의 눈과 입을 보며 말하는 장면이 있죠.
  유진이 민형을 보며 말합니다.
     "이렇게 볼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아.....
      준상아... 준상아... 준상아..."

  준상이의 이름을 계속해서 중얼거리듯 부르는 유진을 보며 김춘수님의 '꽃'이라는 시가 생각이 나 적어봅니다.
  민형이었을 때의 준상이는 유진에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준상이었을 때의 민형은 유진에게 꽃이 되었을 거 같아서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자신의 기억記憶 이전以前의 이름을 계속해서 중얼거리는 유진을 보며 민형은 말합니다.
     "유진씨...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요... 나... 기억하진 못해도 .. 다 들어줄게요..."

  이 말 들으면서 류시화님의 글을 생각합니다.

     너의 눈에 나의 눈을 묻고
     너의 입술에 나의 입술을 묻고
     너의 얼굴에 나의 얼굴을 묻고

     말하렴, 오랫동안 망설여왔던 말을
     말하렴, 네 숨 속에 숨은 진실을
     말하렴, 침묵의 언어로 말하렴

  유진이 준상이었을 때를 전혀 기억 못하는 민형에게 '기억 안나요?'하며 이것저것 급하게 묻는 모습을 보면서 정채봉님의 '사랑을 묻는 당신에게'중의 한 구절이 생각이 나 적어봅니다.

     한 계단씩 오르는 사랑의 탑
     사랑은 한 계단씩
     차근차근 밟고 오르는 탑
     한꺼번에 점프할 생각은 아예 마셔요.
     아무리 사랑에 목마르고 배고파도
     서두르지 마셔요.
     사랑은 밥짓는 것과 같아요.
     쌀을 씻고, 앉히고, 열을 들이고, 뜸을 들이고...
     속성의 밥은 문제가 있기 마련입니다.

  유진의 말을 듣고서... '미안하다'는 민형에게 유진이 이렇게 말하면서 울죠.
     "아니에요.... 민형씨 잘못 아니에요.... 준상이 잘못이야.... 준상이가 나빠.... 민형씬...
      기억할 수 없으니까.... 다 준상이 잘못이예요.....살아있었으면서 나 다 잊어버리고.....
      난 아무것도 잊지 않았는데.... 다 기억하는데....."

  전 이 말이 이렇게 들렸습니다.
     "당신을 용서해요..."

  그리고 유진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생겼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충분히 안다는 건 하나의 우주를 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뭘 좋아하고, 어떤 세월을 견뎌 왔고, 그 사람의 습관이 어떤지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충분히 안다는 것은 평생의 시간이 걸리는 위대한 일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알아 가는 과정은 놀랄 만큼 따뜻하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당신 앞에 펼쳐진 도시의 불빛보다도, 밤하늘의 별빛보다도 말입니다

  민형이 상혁에게 전화를 걸어 '유진이 자신과 같이 있다'고 말하죠.
  상혁은 '유진이가 다 알았겠군요'... 라고 민형에게 말하구요.

  이 장면 보면서 이런 시가 생각이 났습니다.
  허탈해하는 상혁을 보는 거 같아서요. 이런 걸 업보業報라고 하죠.

     살아간다는 것이
     언제나 부메랑 같습니다

     나에게서 시작해서
     나에게로 돌아오는 것이

     누군가에게 했던 말들을
     되돌려 받을 때가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게 어차피
     나에게서 시작해서 비롯된 말입니다.

     부메랑의 출발점이 나인데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그저 다시 받아드는 게
     부메랑을 던지는 방법인 것을...

     그래서 조용히 던진 부메랑을
     두 손으로 받아들었습니다

  떠나겠다고 결정하고... 자고 있는 유진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민형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대 눈가에 머문 행복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아주 커다란 기쁨을 느껴요.

     그대를 바라보며,
     우리가 함께 나누어 가진 것을 돌아보는
     행복함을 나는 사랑합니다.

     내 인생엔 그런 순간들이 필요하죠.
     그대의 선량함과 베푸는 마음과,
     우리가 만들었던 모든 추억이
     내겐 필요해요.
     그대와 한 약속과 계획,
     그저 당신 손을 잡는 것만으로도
     선물을 받은 듯한 소중한 느낌이
     전해져요.

     내가 상상하는 모든 소원이
     실현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선,
     그 모든 소원이 필요 없답니다.

     내가 원하는 모든 것,
     그것은 당신과 함께 하는 것이니까요.

  민형이 나가고... 조금 있다 눈을 뜨고 민형의 편지글을 보다가... 황급히 뛰어나가는 유진을 보면서 이정하님의 詩중에 몇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함께 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로 인한 슬픔과 그리움은
     내 인생 전체를 삼키고도 남게 했던 사람.
     만났던 날보다 더 사랑했고
     사랑했던 날보다
     더 많은 날들을 그리워했던 사람.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함께 죽어도 좋다 생각한 사람.
     세상의 환희와 종말을 동시에 예감케 했던
     한 사람을 사랑했네.

     떠난 이후에도 차마 지울 수 없는 이름.
     다 지웠다 하면서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눈빛.
     내 죽기 전에는 결코 잊지 못할
     한 사람을 사랑했네.
     그 흔한 약속도 없이 헤어졌지만
     아직도 내 안에 남아
     뜨거운 노래로 불려지고 있는 사람.
     이 땅 위에 함께 숨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마냥 행복한 사람이여,
     나는 당신을 사랑했네.
     세상에 태어나 단 한 사람
     당신을 사랑했네.

  도로를 무단으로 횡단하며 민형을 향해 달려오는 유진의 모습을 보면서 '아가서'에 나오는 이 구절이 생각납니다.

     사랑은 죽음처럼 강한 것
     시샘은 저승처럼 극성스러운 것
     어떤 불길이 그보다 거세리오.
     바닷물로도 끌 수 없고,
     굽이치는 물살로도 쓸어갈 수 없는
     있는 재산 다 준다고 사랑을 바치리요.

  이번 글은 여기까지 적어야겠습니다.
  글이 너무 길어지는 거 같고... 생각이 정리가 안 되네요.

  '편안함' 그것은 경계해야 할 대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편안함은 흐르지 않는 강물이기 때문입니다. '불편함'은 흐르는 강물입니다. 흐르는 강물은 수많은 소리와 풍경을 그 속에 담고 있는 추억의 물이며 어딘가를 희망하는 잠들지 않는 물입니다.

  신영복의 '나무야 나무야'중에 나오는 말입니다. 스타지우에 오시는 분들 중에 지금 편안함에 안주하고 있다면 그것을 박차고 일어나십시오. 흐르지 않는 강물에 오래 있으면 그 자신도 강물과 더불어 결국 썩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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