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하님의 시詩로 戀歌 15부를...

조회 수 9942 2002.03.13 09:41:04

  민형과 유진이 새로 얻은 집을 다 정리하고 둘이 오붓하게 앉아서 옛 기억을 찾으려고 애쓰는 장면이 있죠.
  이 장면중에서 가장 기억나는 장면은 이 부분입니다.

  유진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준상이 슬픈 눈으로 말하죠.
    "내가... 너한테..... 무슨 얘기를 해주려고 했던 걸까...."
  유진은 이 말에 마음이 아파옵니다.
  준상은 유진을 보며 말합니다.
    "미안해..... 기억 못해서..."
  유진은 눈물 가득한 눈에 애써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합니다.
    "괜찮아.... 내가 다 기억하고 있는데 뭐...... 나중에 다 생각날거야."

  이 장면을 보면서... 유진이 민형에게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 같더군요.

       이 한세상 살아가면서
       슬픔은 모두 내가 가질 테니
       당신은 기쁨만 가지십시오.
       고통과 힘겨움은 내가 가질 테니
       당신은 즐거움만 가지십시오.

       줄 것만 있으면 나는 행복하겠습니다.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호프집에서 가가멜 선생과 제자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유진과 민형이 나타나면서 분위기가 바뀔 때... 유진을 보는 상혁의 심정心情이 되어 보았습니다.

       차라리 잊어야 하리라, 할 때
       당신은 또 내게 오십니다.

       한동안 힘들고 외로워도
       더 이상 찾지 않으리라, 할 때
       당신은 또 이미 저만치 오십니다.

       어쩌란 말입니까 그대여,
       잊고자 할 때
       그대는 내게 더 가득 쌓이는 것을.

       너무 깊숙이 내 안에 있어
       이제는 꺼낼 수도 없는 그대를.

  모두에게 죄인이 되어 가시방석같은 호프집에 앉아 있는 유진의 표정을 보면서 '바람 속을 걷는 법'이라는 이정하님의 시가 생각이 났습니다.

       바람 불지 않으면 세상살이가 아니다.
       그래, 산다는 것은
       바람이 잠자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바람이 약해지는 것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바람 속을 헤쳐나가는 것이다.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볼 것,
       바람이 드셀수록 왜 연은 높이 나는지.

  어차피 불어오는 바람을 맞을 바에는 잠잠하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차라리 둘이 마주보고 헤쳐나가는 것이 더 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러다 깨지면... 깨지더라도 둘의 사랑은 더 깊어지겠죠. 바람이 드셀수록 높이 나는 연鳶처럼 말입니다.

  호프집에서 민형이 넋을 놓고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있죠.
    "유진아... 강준상 도대체 어떤 애였니... 도대체 어떤 애였기에... 친구들한테...
     이렇게 상처만 준 거니..."

  이 다음 장면에 보면 민형이 유진에게 기억을 빌려달라며 춘천에 가자고 하죠.
  전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민형이 밤에 호프집에서 그런 말을 하고, 그 다음 날 아침에 밝아진 표정을 보면서 밤에 이러한 시간을 가진 것은 아닌가... 하구요.

       때로는
       서럽게 울어보고 싶은 때가 있네
       아무도 보지 않는 데서 넋두리도 없이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하여 정갈하게 울고 싶네
       그리하여 눈물에 흠씬 젖은 눈과
       겸허한 가슴을 갖고 싶네

       그럴 때의 내 눈물은
       나를 열어 가는 정직한 자백과 뉘우침이 될 것이다.
       가난하지만 새롭게 출발할 것을 다짐하는
       내 기도의 첫 구절이 될 것이다.

  춘천에서의 버스 신scene과 1부에서의 버스 회상回想신scene을 보면서 전에 쓴 시詩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녀의 머리냄새를 맡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고 싶었습니다.
       가능하다면 영원히라도 함께 있고 싶었습니다.

  학교 담에서 예전의 기억을 되찾고자 애쓰며... 유진이 시키는 일을 모두 하는 민형을 보면서... 민형은 유진의 마음을 이런 식으로 이해한 거 아닌가 생각을 해 봅니다.

       내 그대를 위해 하루에 담배 한 개비씩
       덜 피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내 그대를 위해 거창한 것은 해주지 못하나
       아름답고 든든한 배경은 되어 주지 못하나
       아주 작은 티끌 하나로도
       그대의 근심은 되지 않겠습니다.

       그대가 피아노를 연주할 때
       악보가 되어 주진 못하나
       건반이 되어 소리를 내겠습니다.
       건반마저 되지 못한다면
       그대가 앉아 있는 의자라도 되겠습니다.

       그대가 시집을 읽을 때
       시는 되어 주지 못하나
       안경이 되어 활자를 밝히겠습니다.
       그마저 되지 못한다면
       책 사이에 끼여 있는 책갈피라도 되겠습니다.

       내 그대를 위해 작정한 모든 것이
       그대 눈가의 잔주름 하나 지울 수 있다면
       세상의 그 무엇이 된들 상관 있겠습니까.
       있는 듯 없는 듯 그대 곁에서
       가까이만 있겠습니다.
       내 그대를 위해 거창한 것은 해주지 못하나
       아름답고 든든한 배경은 되어 주지 못하나
       행여 티끌 하나라도 근심은 되지 않겠습니다.

  물론 유진은 민형의 기억을 되찾아주기 위해 예전에 했던 일들을 하는 거지만... 어쩌면 유진도 민형이 기억을 잃어버리기 전 그 때로 돌아가고자 애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때의 사건이 자기 탓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탓인지...

  유진이 보고 있고... 민형이 호숫가에서 돌을 던지는 장면이 있죠.
  유진이 친구들과 같이 준상을 보낸 그 호숫가 말입니다.
  만약에 여기에 유진 혼자 왔다면 이정하님의 이 시詩와 같은 마음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해 겨울, 죽은 친구를 생각하며

       바람이 불지 않았다.
       왜 불지 않느냐 이유도 없이
       그저 불지 않았다.

       미성년에서 성년으로 넘어가는 길목
       언제가 우리 가슴을 적시는 것은
       추위가 아닌 바람이었다.
       눈이 내리지 않았다.
       왜 내리지 않느냐 이유도 없이
       그저 내리지 않았다.

       썩지는 않겠구나.
       한겨울 모진 추위에 꽁꽁 얼어붙어
       썩어 문드러지지는 않겠구나
       어느 하나 대수롭지 않은 것이 없었던
       그 해 겨울, 죽어 비로소 내 가슴에
       정직하게 살아오는 사람이여.

       나는 아직 숨쉬고 있다.
       악착같이 숨쉬고 있다.

  민형이 호숫가에서 자신을 10년간 기억해 준 유진에게 이런 말을 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 속으로...

       나는 이제
       한쪽 눈만 뜨고
       한쪽 귀만 열고
       한쪽 심장으로만
       숨쉴 것이네.

       내 안에 있는
       당신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아

       다른 한쪽은 모두
       당신 것이야.

  저녁 무렵의 호숫가에 서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유진이 민형에게 말하는 마음 따뜻해지는 얘기를 들으면서... 그리고 서로 포옹하는 그림을 보면서... 이들에게 이 詩를 적어주고 싶습니다.

       지금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어떤 이는
       사랑이 우리에게 편안함과 안락함을 준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거친 물살을 헤쳐가야 하는 조각배 같은 것이 사랑입니다.
       따라서, 사랑이란 이름의 조각배는 한눈을 판다거나
       쉴새없이 노를 젓지 않으면 결코 원하는 곳으로 가주지 않을뿐더러
       때로는 거친 물살에 휩쓸려 뒤집혀지기 일쑤입니다.

       지금 당신이 그 배를 탔다고 생각되시면
       쓸데없이 무겁기만 한 이기와 아집과 질투는 버리십시오.
       번민과 갈등과 고통 속에서 멍하게 있지 말고 부지런히 손을 놀려
       노를 저으십시오. 그러노라면 어느덧 당신의 배는
       물결 잔잔하고 평화로운 어느 호숫가에 닿을 수 있을 겁니다.
       그때서야 당신은 그곳에서 마음껏 사랑을 만끽할 수 있을 겁니다.
       사랑이란 거저 오는 것이 아니라
       쉴새없이 노력하는 가운데 얻어지는 것임을
       당신이 안다면 말이지요.

  민형이 유진에게 벙어리 장갑을 주려고... 그렇게 찾았던 이유를 생각하며 이 시를 적어봅니다.

       고교시절. 아주 아끼던 책이 한 권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유달리 그 책을 아꼈던 것은
       책에 담긴 글 때문이 아니라 먼 곳에서 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예쁘게 포장해 보내준 그때 그 사람의 손길 때문인 것도 같습니다.
       어쨌거나 난 그 책을 늘 몸에 간직하고 다니면서도
       다 읽지는 못했습니다. 책을 선물 받던 그 날.
       이미 반 이상이나 읽어버린 나는
       다음날부터 아껴가며 몇 장씩만 읽어갔기에.
       읽어 넘긴 책장이 두꺼워질수록 그 책을 읽는,
       아니 그 사람의 손길을 느끼는 행복이 줄어들 것만 같아
       내 안타까움도 더해갔고요.

       그러던 어느 날, 다섯 쪽만 남겨놓은 그 책은
       내가 그 책을 선물한 사람과 통화를 하는 동안 공중전화기 뒤로
       넘어가 버렸습니다. 워낙 사람들이 붐비는 역 앞이었는지라
       손가락도 잘 닿지 않는 책을 꺼내기 위해
       전화부스를 차지하고 있을 수는 없었고,
       전화부스 뒤쪽에서 전화기와 부스 유리 사이에 갇힌
       그 책만 멍하니 바라보다 나는 힘없이 돌아서야 했습니다.

       다음날 새벽. 길다란 집게를 들고 그곳까지 달려갔지만
       이미 그 책이 사라진 뒤였습니다.
       그때의 허탈감이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다섯 페이지만큼의 행복이
       항상 내 뒤에 남아 있는 것 같아
       오히려 푸근해지기도 했으니 참 우스운 일이지요?

  민형이 눈을 맞으며 기억의 일부분을 되찾는 모습을 보며 이 글이 생각납니다.

       눈 오는 날엔
       사람과 사람끼리 만나는 게 아니라
       마음과 마음끼리 만난다.

  마음과 마음끼리 만나기 때문에 시공時空을 초월하는 것은 아닌가 하구요.

  戀歌 15부에 대한 제 생각을 어떻게 어떻게 해서 마쳤습니다.
  제 글을 읽으면서 느끼신 분들도 있겠지만... 연가 14부와 연가 15부는 몇 편의 詩와 기억나는 글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정하님의 詩를 모티브motive로 해서 적어보았습니다.
  아마 戀歌 16부도 이정하님의 詩가 주主가 될 거 같습니다.

  戀歌 시작부터 15부까지를 보면서 요즘 전 지우님을 생각하면... 이정하님이 쓰신 시어詩語중에 이 말이 떠오릅니다.

       빼어나게 아름답다는 것은
       가끔 사람을 어지럽게 하는 모양이지요.
       내게 있어 그대도 그러합니다.
       내가 빠져 죽고 싶은
       이 세상의 단 한 사람인 그대.

  스타지우에 오시는 님들도 그러시죠...
  날이 춥네요...
  감기 조심하시고 모두 따뜻한 마음을 가진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럼...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마음써야 할 것은 만나는 이웃에게 좀더 친절해지는 것이다.
  내가 오늘 어떤 사람을 만났다면 그 사람을 통해서 내 안의 따뜻한 가슴이 전해져야 한다.
  그래야 만나는 것이다.
  - 법정 스님의 '산에 꽃이 피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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