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잃으면 우리의 삶은 즉각 변화한다. 머릿속은 회의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고 마음은 고통으로 신음한다. 이때 용기를 내어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힘겨운 경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록 이별과 상실의 아픔이 우리 인생에서 불가피하다고 해도, 그로 인해 받는 고통까지 피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 안에 다시금 사랑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일종의 심리 치유 과정을 통해서다. 상담심리학자들의 임상 경험에 의하면, 남자와 여자는 새 출발을 하는데 다른 점이 많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여자들은 다시 상처받지 않으려고 사랑을 밀어내는 경향이 있는 반면에, 남자들은 곧바로 새로운 만남을 시작하지만 책임 있는 관계를 맺는 데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러므로 좋은 마무리는 좋은 시작을 위해 참으로 중요하다. 마음을 다쳤을 때는 그저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방치해 두지 말아야 한다. 남녀를 막론하고 상한 마음을 치유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과정이 있는데, 첫째는 내가 겪은 일과 느낌을, 나를 잘 아는 사람들과 나누고 도움을 청함으로써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상실에 대한 가슴앓이 단계인데, 가 버린 사람을 기억하거나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슬퍼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는다. 물론 분노, 두려움, 슬픔 같은 갖가지 괴로운 감정들이 밀려와 더 고통스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을 다시 추스르는 가운데 실제로 집착과 미련을 쉽게 끊을 수도 있고, 상대를 용서하는 마음도 생긴다. 이렇게 사랑의 상실에 대해 슬퍼하고 완전히 가슴을 비운 뒤에야 다시 사랑이 가득 차 오를 수 있게 된다. 만약 마음이 아직 온전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사람과 친밀한 감정을 나누려 한다면, 남자는 상대방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능력이 제한될 것이고, 여자는 사랑을 받는 능력이 제한된다. 그런데 우리의 가슴은 머리보다 더디다. 즉, 사랑을 잃었을 때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머리에 비해 가슴이 훨씬 더딘 것이다. 감정이 내 안에서 계속 썰물과 밀물처럼 파도칠 땐 누군가에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 '감정 편지'를 쓰면 기분이 한결 좋아질 것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위한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져 본다. 내가 성공했던 때, 누군가 나를 좋아하고 격려 받았던 때, 여러 사람과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가졌던 때, 위험을 무릅쓰고 어떤 일을 해서 남들에게 감사를 받았던 기억 등등에 대해 차분히 정리해 본다.
겨울연가 12부를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서, 존 그레이의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의 한 구절이 생각이 나 적어보았습니다.
유진, 민형, 상혁, 채린... 모두에게 들려주고 싶어서요.
민형이 택시를 잡고 있는 모습을 보는 유진의 눈을 보았습니다.
눈물조차 제대로 흘리지 못하는 유진을 보면서, 유진이 되어 양귀자님의 글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지쳐서 쓰러지더라도 이 고통이 행복임을 잠시 잊었나봅니다. 그대에게 가고 싶은 마음이야 하루에도 수천 번이지만 그렇지만 욕망을 이기는 기도祈禱 또한 수천, 수만 번에 이릅니다. 이 욕망이 식은 다음에 다가올 사랑을 나는 더욱 원합니다. 이 곳에 남아서 계속 그리움의 탑을 쌓는 것이 아직은 나의 길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렇다면 나는 당신이 택한 그 사람까지 내 사랑 속에 품겠습니다.'
이번에는 택시를 잡는 민형이 되어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니 민형이 백혈병으로 죽는다는 원래의 synopsis대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가장 슬픈 일이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 말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슬픈 건 내 마음으로부터 먼 곳,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다른 남자의 품으로 내 사랑을 멀리 떠나보내는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슬픈 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세상을 살았고, 그 사람을 위해 죽을 결심을 했으면서도 그 사람을 두고 먼저 죽는 일이다. 이제 더 이상 그 사람에게 줄 게 없다는 일이다.
유진이 민형이 잡아 준 택시를 타고 상혁의 집에 간 장면이 있죠.
제가 쓰고자 하는 장면은 유진이 상혁을 먼저 포옹하면서 '미안해요'하는 장면입니다.
몸은 여기에 있는데... 마음은 민형에게 주고 온 유진의 이 말을 들으면서 '사무친다'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사무친다는 게 뭐지?"
"아마 내가 너의 가슴속에 맺히고 싶다는 뜻일 꺼야."
"무엇으로 맺힌다는 거지?"
"흔적.... 지워지지 않는 흔적..."
상혁이 한 거짓말이 유열을 통해서 들킨 뻔한 장면이 나오죠.
이 장면 보면서 상혁에게 해주고 싶은 글이 생각났습니다... 어쩌면 생애에서 가장 기뻐하고 있을 그에게 말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자유와 사랑의 순간에 무서운 고통이 뒤따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고통을 지불하지 않은 사랑이 있으면 주위를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사랑은 반드시 무엇인가를 지불하고 있을 것이다. 어둠이 깊을수록 별들은 더욱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 글도 들려주고 싶습니다.
우리는 신뢰를 통해 진정 큰 것을 얻는다. 그리고 우리는 의심을 통해 많은 것을 잃어버린다. 농부가 씨앗을 뿌릴 때는 땅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무 것도 없는 땅에 씨앗을 뿌리지만 언젠가 무성한 열매를 맺으며 자라날 것을 믿기에.... 그러므로 신뢰는 만물을 이루어내는 힘이 된다.
유진 아버지의 산소에 상혁이와 유진이 같이 가는 장면이 있었죠.
상혁이가 자신의 장인 되실 분에게 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었죠.
"유진이 마음 속에 좋은 그림 그릴 수 있게 잘 살아볼께요."
전 상혁의 말을 들으면서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의 한 구절을 떠올려보았습니다.
그리고 상혁은 어떤 종류의 사람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림을 아는 사람은 설명하고,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저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리고 그림을 즐기는 사람은 일상생활 속에서도 거기에 그려지는 대상을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산수화를 즐기는 사람은 삶 속에서도 자연을 찾고, 꽃 그림을 즐기는 사람은 삶 속에서도 꽃을 피우며, 인물화를 진정 즐기는 사람은 삶 가운데서도 사람들을 사랑하게 마련이다. 그것도 그냥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생태까지도 마음 깊이 이해하는 참사랑을 갖게 되는 것이다.
상혁이 장인에게 말하고 있을 때의 유진의 눈을 보았습니다.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이 여인의 눈을 보면서 신달자님의 '고백'중에 한 구절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상혁이한테는 미안하지만...
그러나 제 아무리 어둠이 강해도 강은 거기 있다. 분명한 존재는 어둠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가려있을 뿐이다. 이 세상엔 보이는 것보다 가려있는 것이 더 많다. 진실도 사랑도 감추어져 있는 것이 더 많으리라. 그래서 인생은 아직 절망적이지 않다. 더 아름답게 눈뜨는 힘을 길러서 가려진 것을 보는 지혜를 배우는 일이 급하다. 그래서 아마 포기야말로 가장 악덕이라고 말했는지 모른다.
상혁이 저를 또 한번 실망시키는 장면이 나오네요.
아무리 놀라고 당황하고 급하더라도 집 앞에까지는 데려다주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인데...
버스 정류장에 내려놓고는 '금방 올 테니 집에 가 있으라'는 한 마디.
연가 1부에서 보니 정류장에서 집까지의 거리가 보통이 아니던데...
그런데도 유진은 상혁에게 이유를 물어보지 않고 오히려 걱정하며 차에서 내리네요.
저에게 이 말을 떠오르게 하면서요.
어머니는, 사람은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상흔이 깊을수록 더욱 사랑하라고 한다.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일지라도 사랑하라고 한다. 그 사람이 받은 마음의 상처가 깊다는 것을 알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용서하는 것만이 상처를 치유할 수 있고, 바로 그곳에서 사랑은 시작된다고 당부한다.
유진이 '사랑의 오솔길'로도 불리는 메타세콰이아Metasequoia 나무길을 홀로 걷는 장면이 나오죠.
쓸쓸하게요.
전 여기서 이 말이 생각이 났습니다.
혹시 그거 아세요? 눈이나 비가 오면 왜 괜히 울적해지고 누군가가 그리워지는지... 어딘가에서 들은 말인데 사랑하는 연인에게 "사랑해..." 하고 처음 고백한 말은 상대의 귀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하늘로 올라간대요. 그 말들이 쌓여서 구름이 되고 무거워지면 눈이나 비가 된다고 하더군요. 수줍은 첫 고백들이 온통 세상으로 떨어져 내리니 기분이 심란해질 수밖에 없겠죠.
유진이 민형이 자신에게 해준 말을 떠올리는 장면이 나오죠.
"봐요. 이렇게 아름답잖아요. 여기.. 이렇게 아름다운데 유진씨가 본 건 뭐죠?
슬픈 추억 밖에 안보이는 거죠."
저라면 유진에게 톨스토이의 이 글을 들려주었을 거 같습니다.
지난날의 추억은 아름답다. 그것이 비록 부끄럽고, 쓰라린 추억일지라도.. 우리 인생을 기름지고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은 어린 시절의 추억에서 비롯된다. 자신이 간직한 비밀스런 추억들을 어떤 방법으로든 남에게 보여준다는 것은 조금은 당황스럽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언제나 비밀스런, 나무 밑 모래를 파고 묻어 놓았던, 헤아리며 느끼던 만족감과 같은 뿌듯함을 혼자만 간직하고 싶은 건 우리 모두의 향수 같은 것이다.
노을 질 때 상혁이 유진을 데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상혁과 유진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금잔화'를 쓴 중국작가의 말입니다.
황혼의 노을이든 여명의 노을이든 다 같은 노을이다. 왜냐하면 모두 너희 둘만의 노을이기 때문이다. 사랑해서 평생을 같이하기로 약속한 사람들은 여명 뒤에 오는 밝은 아침만을 함께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황혼 뒤에 오는 어두운 밤도 함께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면서 유진에게 '내가 준상이야!' 외치며 피를 토할 것 같은 민형에게... 여기에 적합할 지는 모르겠지만, 이정하님의 글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 두 마리가 서로 사랑했네. 추위에 떠는 상대를 보다못해 자신의 온기를 전해 주려던 그들은 가까이 다가서면 갈수록 서로에게 상처만 준다는 것을 알았네. 안고 싶어도 안지 못했던 그들은, 자신들의 몸에 난 가시에 다치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거리에 함께 서 있었네. 비록 자신의 온기를 다 줄 수 없어도 그들은 서로 행복했네. 사랑은 그처럼 적당한 거리에 서 있는 것이다.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의 온기를 느끼는 것이다. 가지려고, 소유하려고 하는 데서 우리는 상처를 입는다. 나무들을 보라. 그들은 서로 적당한 간격으로 떨어져 있지 않은가. 함께 서 있으나 너무 가깝게 서 있지 않는 것,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고 그늘을 입히지 않는 것, 그렇게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랑이 오래 간다.
유진과 상혁이 도망치듯 민형 곁을 떠나서 건널목에 차를 세우는 장면이 나오죠.
둘이 서로 한숨을 쉬는 모습을 보면서, 아직까지도 상혁을 포기 못한 저는 이들에게 이해인님의 이 글을 들려주고 싶네요.
사랑한다는 말은 가시덤불 속에 핀 하얀 찔레꽃의 한숨 같은 것.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은 한 자락 바람에도 문득 흔들리는 나뭇가지.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말은 무수한 별들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거대한 밤하늘이다. 어둠 속에서도 훤히 얼굴이 빛나고 절망 속에서도 키가 크는 한 마디의 말. 얼마나 놀랍고도 황홀한 고백인가.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말은.
여기 다음 장면부터는 다음 글에 써야겠습니다.
졸음을 참기 위해 창문을 열어놓았더니 손이 곱아지네요.
저도 탁상에 엎드려 조금 자야겠어요.
그럼... '완전한 사랑이란 온 힘을 다 바치는 사랑을 의미한다'는 A. 카울리의 말처럼 있는 힘 다해 사랑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라며 이만 줄일까 합니다.
겨울연가 12부를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서, 존 그레이의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의 한 구절이 생각이 나 적어보았습니다.
유진, 민형, 상혁, 채린... 모두에게 들려주고 싶어서요.
민형이 택시를 잡고 있는 모습을 보는 유진의 눈을 보았습니다.
눈물조차 제대로 흘리지 못하는 유진을 보면서, 유진이 되어 양귀자님의 글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지쳐서 쓰러지더라도 이 고통이 행복임을 잠시 잊었나봅니다. 그대에게 가고 싶은 마음이야 하루에도 수천 번이지만 그렇지만 욕망을 이기는 기도祈禱 또한 수천, 수만 번에 이릅니다. 이 욕망이 식은 다음에 다가올 사랑을 나는 더욱 원합니다. 이 곳에 남아서 계속 그리움의 탑을 쌓는 것이 아직은 나의 길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렇다면 나는 당신이 택한 그 사람까지 내 사랑 속에 품겠습니다.'
이번에는 택시를 잡는 민형이 되어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니 민형이 백혈병으로 죽는다는 원래의 synopsis대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가장 슬픈 일이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 말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슬픈 건 내 마음으로부터 먼 곳,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다른 남자의 품으로 내 사랑을 멀리 떠나보내는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슬픈 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세상을 살았고, 그 사람을 위해 죽을 결심을 했으면서도 그 사람을 두고 먼저 죽는 일이다. 이제 더 이상 그 사람에게 줄 게 없다는 일이다.
유진이 민형이 잡아 준 택시를 타고 상혁의 집에 간 장면이 있죠.
제가 쓰고자 하는 장면은 유진이 상혁을 먼저 포옹하면서 '미안해요'하는 장면입니다.
몸은 여기에 있는데... 마음은 민형에게 주고 온 유진의 이 말을 들으면서 '사무친다'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사무친다는 게 뭐지?"
"아마 내가 너의 가슴속에 맺히고 싶다는 뜻일 꺼야."
"무엇으로 맺힌다는 거지?"
"흔적.... 지워지지 않는 흔적..."
상혁이 한 거짓말이 유열을 통해서 들킨 뻔한 장면이 나오죠.
이 장면 보면서 상혁에게 해주고 싶은 글이 생각났습니다... 어쩌면 생애에서 가장 기뻐하고 있을 그에게 말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자유와 사랑의 순간에 무서운 고통이 뒤따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고통을 지불하지 않은 사랑이 있으면 주위를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사랑은 반드시 무엇인가를 지불하고 있을 것이다. 어둠이 깊을수록 별들은 더욱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 글도 들려주고 싶습니다.
우리는 신뢰를 통해 진정 큰 것을 얻는다. 그리고 우리는 의심을 통해 많은 것을 잃어버린다. 농부가 씨앗을 뿌릴 때는 땅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무 것도 없는 땅에 씨앗을 뿌리지만 언젠가 무성한 열매를 맺으며 자라날 것을 믿기에.... 그러므로 신뢰는 만물을 이루어내는 힘이 된다.
유진 아버지의 산소에 상혁이와 유진이 같이 가는 장면이 있었죠.
상혁이가 자신의 장인 되실 분에게 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었죠.
"유진이 마음 속에 좋은 그림 그릴 수 있게 잘 살아볼께요."
전 상혁의 말을 들으면서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의 한 구절을 떠올려보았습니다.
그리고 상혁은 어떤 종류의 사람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림을 아는 사람은 설명하고,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저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리고 그림을 즐기는 사람은 일상생활 속에서도 거기에 그려지는 대상을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산수화를 즐기는 사람은 삶 속에서도 자연을 찾고, 꽃 그림을 즐기는 사람은 삶 속에서도 꽃을 피우며, 인물화를 진정 즐기는 사람은 삶 가운데서도 사람들을 사랑하게 마련이다. 그것도 그냥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생태까지도 마음 깊이 이해하는 참사랑을 갖게 되는 것이다.
상혁이 장인에게 말하고 있을 때의 유진의 눈을 보았습니다.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이 여인의 눈을 보면서 신달자님의 '고백'중에 한 구절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상혁이한테는 미안하지만...
그러나 제 아무리 어둠이 강해도 강은 거기 있다. 분명한 존재는 어둠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가려있을 뿐이다. 이 세상엔 보이는 것보다 가려있는 것이 더 많다. 진실도 사랑도 감추어져 있는 것이 더 많으리라. 그래서 인생은 아직 절망적이지 않다. 더 아름답게 눈뜨는 힘을 길러서 가려진 것을 보는 지혜를 배우는 일이 급하다. 그래서 아마 포기야말로 가장 악덕이라고 말했는지 모른다.
상혁이 저를 또 한번 실망시키는 장면이 나오네요.
아무리 놀라고 당황하고 급하더라도 집 앞에까지는 데려다주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인데...
버스 정류장에 내려놓고는 '금방 올 테니 집에 가 있으라'는 한 마디.
연가 1부에서 보니 정류장에서 집까지의 거리가 보통이 아니던데...
그런데도 유진은 상혁에게 이유를 물어보지 않고 오히려 걱정하며 차에서 내리네요.
저에게 이 말을 떠오르게 하면서요.
어머니는, 사람은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상흔이 깊을수록 더욱 사랑하라고 한다.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일지라도 사랑하라고 한다. 그 사람이 받은 마음의 상처가 깊다는 것을 알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용서하는 것만이 상처를 치유할 수 있고, 바로 그곳에서 사랑은 시작된다고 당부한다.
유진이 '사랑의 오솔길'로도 불리는 메타세콰이아Metasequoia 나무길을 홀로 걷는 장면이 나오죠.
쓸쓸하게요.
전 여기서 이 말이 생각이 났습니다.
혹시 그거 아세요? 눈이나 비가 오면 왜 괜히 울적해지고 누군가가 그리워지는지... 어딘가에서 들은 말인데 사랑하는 연인에게 "사랑해..." 하고 처음 고백한 말은 상대의 귀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하늘로 올라간대요. 그 말들이 쌓여서 구름이 되고 무거워지면 눈이나 비가 된다고 하더군요. 수줍은 첫 고백들이 온통 세상으로 떨어져 내리니 기분이 심란해질 수밖에 없겠죠.
유진이 민형이 자신에게 해준 말을 떠올리는 장면이 나오죠.
"봐요. 이렇게 아름답잖아요. 여기.. 이렇게 아름다운데 유진씨가 본 건 뭐죠?
슬픈 추억 밖에 안보이는 거죠."
저라면 유진에게 톨스토이의 이 글을 들려주었을 거 같습니다.
지난날의 추억은 아름답다. 그것이 비록 부끄럽고, 쓰라린 추억일지라도.. 우리 인생을 기름지고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은 어린 시절의 추억에서 비롯된다. 자신이 간직한 비밀스런 추억들을 어떤 방법으로든 남에게 보여준다는 것은 조금은 당황스럽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언제나 비밀스런, 나무 밑 모래를 파고 묻어 놓았던, 헤아리며 느끼던 만족감과 같은 뿌듯함을 혼자만 간직하고 싶은 건 우리 모두의 향수 같은 것이다.
노을 질 때 상혁이 유진을 데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상혁과 유진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금잔화'를 쓴 중국작가의 말입니다.
황혼의 노을이든 여명의 노을이든 다 같은 노을이다. 왜냐하면 모두 너희 둘만의 노을이기 때문이다. 사랑해서 평생을 같이하기로 약속한 사람들은 여명 뒤에 오는 밝은 아침만을 함께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황혼 뒤에 오는 어두운 밤도 함께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면서 유진에게 '내가 준상이야!' 외치며 피를 토할 것 같은 민형에게... 여기에 적합할 지는 모르겠지만, 이정하님의 글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 두 마리가 서로 사랑했네. 추위에 떠는 상대를 보다못해 자신의 온기를 전해 주려던 그들은 가까이 다가서면 갈수록 서로에게 상처만 준다는 것을 알았네. 안고 싶어도 안지 못했던 그들은, 자신들의 몸에 난 가시에 다치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거리에 함께 서 있었네. 비록 자신의 온기를 다 줄 수 없어도 그들은 서로 행복했네. 사랑은 그처럼 적당한 거리에 서 있는 것이다.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의 온기를 느끼는 것이다. 가지려고, 소유하려고 하는 데서 우리는 상처를 입는다. 나무들을 보라. 그들은 서로 적당한 간격으로 떨어져 있지 않은가. 함께 서 있으나 너무 가깝게 서 있지 않는 것,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고 그늘을 입히지 않는 것, 그렇게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랑이 오래 간다.
유진과 상혁이 도망치듯 민형 곁을 떠나서 건널목에 차를 세우는 장면이 나오죠.
둘이 서로 한숨을 쉬는 모습을 보면서, 아직까지도 상혁을 포기 못한 저는 이들에게 이해인님의 이 글을 들려주고 싶네요.
사랑한다는 말은 가시덤불 속에 핀 하얀 찔레꽃의 한숨 같은 것.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은 한 자락 바람에도 문득 흔들리는 나뭇가지.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말은 무수한 별들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거대한 밤하늘이다. 어둠 속에서도 훤히 얼굴이 빛나고 절망 속에서도 키가 크는 한 마디의 말. 얼마나 놀랍고도 황홀한 고백인가.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말은.
여기 다음 장면부터는 다음 글에 써야겠습니다.
졸음을 참기 위해 창문을 열어놓았더니 손이 곱아지네요.
저도 탁상에 엎드려 조금 자야겠어요.
그럼... '완전한 사랑이란 온 힘을 다 바치는 사랑을 의미한다'는 A. 카울리의 말처럼 있는 힘 다해 사랑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라며 이만 줄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