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위한 기도 - 이혜인 수녀님..

조회 수 11291 2002.03.07 22:12:09
앨피네

말을 위한 기도
                                - 이 해 인 –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수없이 뿌려 놓은 말의 씨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조용히 헤아려 볼 때가 있습니다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렵습니다.
더러는 허공으로 사라지고
더러는 다른 이의 가슴 속에서
좋은 열매를 또는 언짢은 열매를 맺기도 했을
언어의 나무

주여

내가 지닌 언어의 나무에도
멀고 가까운 이웃들이 주고 간
크고 작은 말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습니다.
둥근 것 모난 것
밝은 것 어두운 것
향기로운 것 반짝이는 것

그 주인의 얼굴은 잊었어도
말은 죽지 않고 살아서
나와 함께 머뭅니다

살아 있는 동안 내가 할 말은
참 많은 것도 같고 적은 것도 같고
그러나 말이 없이는
단 하루도 살수 없는 세상살이

매일매일 돌처럼 차고 단단한 결심을 해도
슬기로운 말의 주인 되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날마다 내가 말을 하고 살도록
허락하신 주여
하나의 말을 잘 탄생시키기 위하여
먼저 잘 침묵하는 지혜를 깨치게 하소서

헤프지 않으면서 풍부하고
경박하지 않으면서 유쾌하고
과장하지 않으면서 품위있는
한 마디의 말을 위해
때로는 진통 겪는 어둠의 순간을
이겨내게 하소서

참으로 아름다운 언어의 집을 짓기 위해
언제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도를 닦는 마음으로 말을 하게 하소서
언제나 진실하고
언제나 때에 맞고
언제나 책임있는 말을
갈고 닦게 하소서

내가 이웃에게 말을 할 때에는
하찮은 농담이라도
함부로 지껄이지 않게 도와 주시어
좀더 겸허하고
좀더 인내롭고
좀서 분별있는
사랑의 말을 하게 하소서

내가 어려서부터 말로 저지른 모든 잘못
특히 사랑을 거스른 비방과 오해의 말들을
경솔한 속단과 편견과 위선의 말들을 주여 용서 하소서

나날이 새로운 마음, 깨어 있는 마음
그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내 언어의 집을 짓게 하시어
해처럼 환히 빛나는 삶을
당신의 은총 속에 이어가게 하소서

아멘


Only time song by Enya..



동이님께서 이혜인 수녀님의 시집을 읽으셨다고 하는 글을 보고..
제게 있는 유일한 이혜인 수녀님의 시를 올립니다.

댓글 '7'

운영1 아린

2002.03.07 22:38:15

아름다운 언어들이 가득한 스타지우였음 하네요...

하얀사랑

2002.03.08 00:12:14

앨피네님, 하얀사랑 소리내어 읽었답니다... 우선 저부터 노력할께요^^ 힘내라고 말해주고푼 우리 아린님,,, 그리고 앨피네님, 좋은밤 되세요... 속상한거 맘아팠던거 모두 잊는 그런밤,,,

앨피네

2002.03.08 01:11:53

하얀 사랑님.. 소리내어 읽어주셔서 고마와요.. ^^ 글구.. 저 이젠 아무렇지도 않아요.. ^^ 하얀사랑님도 좋은 꿈 꾸시고.. 내일 봐요. ^^

크런키^^

2002.03.08 02:01:36

아 이글.....결연가 홈피 시청자소감란에 올리고 싶다는^^

앨피네

2002.03.08 02:28:56

크런키님.. 올리고 싶은 곳에 있으시면 올리세요..^^ 좋은 글은 많은 분들이 봐야 그 효과가 크죠..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세실

2002.03.08 07:43:01

엘피네님 음악이 너무 좋네요, 물론 해인님의 시도 좋죠.~~ 아린님, 하얀사랑님, 엘피네님, 크런키님 오늘 행복한 날 되세요.

동이

2002.03.09 23:23:06

무거운 한단고기를 읽다가 머리도 식힐겸 읽은 책이었는데 저에게는 새로움이란걸 알게 해준 책이라 이곳 저곳에 남기게 되네요. 앨피네님의 시도 잘 읽고 갑니다. 늘 환히 웃을 수 있는 여유로운 생활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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