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님의 접시꽃 당신

조회 수 3068 2002.09.11 22:24:12
온유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 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서
있는 힘을 다해 맛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니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 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댓글 '8'

이지연

2002.09.11 23:18:35

온유야 자주보니 기분이 좋다 역쉬 우리 33인 열심이라니까... 이밤에 듣는 이노래 참 좋다... 이아줌마 노래 참 잘하지

토토로

2002.09.12 00:00:57

나 도종화님의 시를 한때는 너무 좋았했었는데...오랜만에 보니 옛생각이 새록새록 온유님 좋은글 ,음악 고마워요.

운2 현주

2002.09.12 02:56:45

에고고..글씨가 너무 붙어있어 겨우 읽음..눈돌아가구 있음..^^ 저두 잘읽었어요... 좋은 글은 언제읽어두 좋은느낌이네요..^^ 예전에 읽고..거의 다 잊고 있다가 오랫만에 읽어보니..그때도 지금과 같은 느낌으로 좋아했는지..잘 기억이 안나네요..^^ 언냐들..좋은 밤..^^

일용엄니

2002.09.12 02:58:18

온유님! 이 새벽에 음악을 들으니 기분이 짱이네요.. 넘 좋아요.. 음악 잘 취하고 갑니다..

봄비

2002.09.12 06:50:18

너무 늦게 댓글단다고 음악도 안나오네요..잉~ 잉 너무 차별 말아요.. 잘 읽고 갑니다...

달맞이꽃

2002.09.12 08:06:25

아침에 제일 먼저 온유님에 음악이 행복하게 마음을 촉촉히 적십니다 ~~~고마워요 온유님 오늘도 열심히 즐겁게~~~

들국화

2002.09.12 09:11:06

온유님, 어제 전화 통화 정말 반가웠고, 외출 하기 전에 좋은시와 음악 감상하고 가요.......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길......

이영진

2002.09.12 13:55:35

부산에 사시는 온유님 맞으시죠? 오래간만에 좋은시를 접하니 너무 좋으네요 잘 보고 갑니다 오늘 하루도 좋은일만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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